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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1] 트럼프발 관세 전쟁·이민 단속, ‘열린 미국’이 전시산업을 흔들다

  • 작성자 사진: 준걸 김
    준걸 김
  • 11월 9일
  • 6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일 전


전시산업의 새로운 시험대, CES 2026을 둘러싼 긴장

불확실성 커진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의 대응 전략은?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이후, 미국 전시산업이 거센 정치적 파고 앞에 놓여 있다. 고율 관세와 이민 규제 강화로 세계 최대 전시시장의 개방성과 신뢰도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차-LG 합작 공장 단속 이후 외국 기업의 불안이 커지면서, CES 2026(국제전자제품박람회, 이하 CES)을 앞둔 한국 기업들도 긴장하고 있다. 전시 자재비 상승과 비자 심사 강화는 글로벌 교류의 기반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불확실성은 동시에 한국 전시산업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정책 안정성’과 ‘운영 효율성’을 무기로 글로벌 전략을 다시 세울 때다. 변화하는 미국 전시산업의 흐름 속에서 한국이 주목해야 할 시사점을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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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 권순우 더밀크 서던플래닛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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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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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리스크, 미국 전시산업을 위협하는 새로운 변수

“CES 2026을 찾는 한국 관계자들의 비자 취득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미국 소비자기술협회(이하 CTA) 게리 샤피로(Gary Shapiro) 회장의 말이다. 세계 최대 기술 박람회인 CES를 주관하는 CTA의 샤피로 회장은 지난 9월 24일 방한해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평소라면 당연하게 들릴 이 발언이 유독 강조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앞서 9월 3일, 미국 조지아주의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 이민세관단속국(ICE, 이하 ICE)이 대규모 불법 고용 단속을 실시했고, 당시 체포된 475명 중 약 300명이 한국 기업 소속 직원으로 확인됐다. 현지 언론에서도 ‘전례 없는 강경 단속’이라는 평가가 나올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샤피로 회장은 이번 사태로 촉발된 한국 기업들의 반미 정서를 의식한 듯 “비자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으며, 내년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 2026 참가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다만 “언론과 기업 모두 비자 신청에 충분한 여유를 두고 준비해 달라”라는 당부를 덧붙였다.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경제 파트너로 자리매김한 한국이지만, 최근 한국 기업들은 강화된 이민 단속과 까다로워진 비자 심사로 인해 당혹스러운 상황에 놓여 있다. 한미동맹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이른바 ‘트럼프 리스크’가 현실화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이후 미국 경제 전반에는 보호무역 강화, 관세부활, 이민 규제 확대 등 초강경 정책 기조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정치 구호를 넘어 산업 구조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중이다.

글로벌 무역과 혁신의 교차점에 서 있는 전시산업도 트럼프 리스크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미국은 세계 최대 전시 시장으로, CES를 비롯해 NAB(라스베이거스 방송기자재 박람회), IMTS(시카고 공작기계 전시회), BIO(샌디에이고 바이오 전시회) 등 대형 국제 행사가 매년 수만 명의 해외 바이어와 기업을 불러 모은다. 하지만 관세 갈등, 외국인 입국 제한, 정치적 불확실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전시 강국인 미국의 입지가 흔들리는 중이다. CES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 기업들은 오랫동안 CES의 주역이었고, 지난해 CES 2025에서는 미국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참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관세 여파와 이민 단속 같은 불확실성이 겹치며 CES 참가를 망설이는 기업들이 늘고 있는 실정이다. 트럼프 리스크가 미국 전시산업을 위협하는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는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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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CTA의 존 켈리 부사장(JOHN T. KELLEY), 킨제이 파브리치오(KINSEY FABRIZIO) 회장,

게리 샤피로(GARY SHAPIRO) CEO 겸 부위원장이 지난 9월 24일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CES 2026을 홍보하고 있다. © CTA

 


트럼프 2기 관세 정책, 미국 전시산업에 비용 압박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컨벤션 세팅 코스트가 관세 여파로 인해 최소 25% 이상 상승했다”라고 전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고율 관세 정책이 전시산업 전반의 비용 구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단순히 수입 원가가 높아진 것을 넘어 전시 준비의 전 과정에서 부담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AV 장비, 모듈식 전시 시스템, 판촉물 등 주요 전시 자재의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고, 무엇보다 중국산 부품 의존도가 높은 LED 조명은 대표적인 부담 요인으로 지목된다. 미국 이벤트 전시기업 AVS의 새미 블리스(Sammy Bliss) 부사장은 “전자제품, 가구, 장식 요소, 직물 등 미국 내 생산이 어려운 품목의 가격이 전반적으로 오르고 있다”라고 말했다. 철강·알루미늄(최대 50%), 수입 목재(10%), 가구(25~50%) 등에 부과된 관세가 누적되면서 공급망 압박이 심화되고 있다. 일부 마케터들은 외국산 주류에 대한 관세 인상으로 바(bar) 설치 계획을 수정하는 등 세부 운영 전략을 조정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국제전시이벤트협회(IAEE)의 마샤 플래너건(Marsha Flanagan) 회장은 “관세 불확실성은 주최자, 출품업체, 참석자 모두에게 비용 부담을 높이는 요인”이라며, “특히 중소기업에는 상대적으로 큰 타격이 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국제판촉물협회(PPAI) 조사 결과에 따르면 상위 100개 공급업체 중 78%가 제품 가격을 인상했으며, 70%는 조달처 다변화를 추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에서도 대응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아날로그 이벤트(Analog Events)의 조던 케이(Jordan Kaye) CEO는 “현지 조달 비중을 높이려 노력하고 있지만, 철강 등 일부 원자재는 여전히 영향을 피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법률 자문사들 또한 새로운 계약 관행을 제시하고 있다. 카타우델라 로펌(Cataudella Law)의 폴 카타우델라(Paul Cataudella) 수석 변호사는 “호텔 계약 시 관세 부과에 따른 비용 변화가 발생할 경우, 상호 협의할 수 있다는 문구를 포함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시장조사업체인 스키프트 미팅스(Skift Meetings)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0%가 비용 상승을 가장 큰 우려로 꼽았고, 82%는 2025~26년도 이벤트 비용이 추가로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무역 환경 변화가 전시산업의 새 변수로 떠오르면서 업계 전반에서 효율화 노력과 조달 다변화로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전시업계 관계자는 “연간 8천만 명에 달하는 방문객 중 절반이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오는데 최근 이 비중이 감하고 있다”라며 “해외 바이어의 전시 참가율도 하락세를 보이고 글로벌 기업들까지 출장 기간과 예산을 대폭 줄이는 추세”라고 전했다.

 


이민 단속 강화로 흔들리는 미국의 전시·관광산업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반이민 정책이 미국 전시·관광업계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시산업은 국적과 문화를 넘어 기술과 아이디어가 교류되는 글로벌 플랫폼이지만, 비자 심사 강화와 체류 기간 단축, 불확실한 단속 정책은 글로벌 혁신 생태계의 다양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특히 한국 기업들은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에서 벌어진 ICE의 대규모 단속 사태로 큰 충격을 받은 상태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법 집행을 넘어, 미국 내 외국인 근로자와 기업들 사이에 ‘언제든 표적이 될 수 있다’라는 불안감을 확산시켰다. 단속 강화는 다른 지역에서도 긴장을 높이고 있다. 시카고에서는 단속 과정에서 주민 반발이 격화돼 경찰이 최루가스를 사용하는 충돌까지 벌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앞서 “이민 단속과 범죄 진압을 방해하는 시위에는 군 투입도 고려하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라스베이거스의 호스피탈리티 산업(hospitality industry)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때 호텔·레스토랑·농장 등에서 ICE 작전을 중단하기로 했던 결정을 번복했다. 미국 요리사 노동조합(Culinary Union) 226지부의 테드 파파지오르그(Ted Pappageorge) 회장은 지역 방송 KTNV와의 인터뷰에서 “주요 리조트들은 엄격한 고용 검증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트럼프 침체(Trump recession)’를 우려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라스베이거스의 게임산업은 고도로 규제돼 있지만 노동조합의 다수는 이민자 근로자들”이라며 “무리한 단속은 산업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요리사 노동조합에 따르면 조합원들은 178개국 출신으로 40개 언어를 사용하며, 라스베이거스와 리노 지역의 6만 명 근로자 중 45%가 이민자다. 네바다 전체 노동력의 약 24%를 차지하는 이들이 주 경제에 기여하는 규모는 연간 약 202억 달러에 달한다. 그럼에도 강경 일변도인 정부의 단속은 전시·관광업계 전반을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CES 현장에서 ICE 단속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CES 주최 기관인 CTA는 “ESTA(전자여행허가제)를 통한 입국에는 문제가 없다”라고 해명했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 기조로 인한 해외 참가자들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이민 단속 강화의 여파는 라스베이거스 관광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국제 방문객 감소로 인해 숙박업 근로자들의 대량 해고가 이어지고 있고, 라스베이거스 방문객 수는 지난 6월 전년 대비 11.3% 감소했다. 라스베이거스 컨벤션·방문자협회(LVCVA)에 따르면 같은 달 국제 방문객은 13% 줄었다. 네바다주의 최대 국제 관광 시장인 캐나다에서도 항공 수요가 급감했다. 캐나다 저가항공사 플레어 항공(Flair Airlines)의 승객 수는 전년 대비 55% 감소했으며, 에어 캐나다(Air Canada)의 라스베이거스 노선 승객은 5~6월에 13.2% 줄었다. 전년 동기 대비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수치다. 이 같은 흐름은 라스베이거스를 넘어 미국 전역의 관광산업에도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미국 상무부 산하 국제무역청(ITA)에 따르면 올해 3월 항공편으로 미국에 입국한 외국인 수는 전년 동월 대비 9.7% 감소했다. 같은 기간 유럽 국적자의 입국은 14.3%, 서유럽만 놓고 보면 12% 줄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제외하면 역대 최대 폭의 감소다.

JP모건은 최근 보고서에서 외국인 관광객 감소로 인해 미국 GDP에 약 100조 원 규모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반이민 정책이 단순한 정치적 이슈를 넘어, 미국 경제의 체력과 글로벌 신뢰도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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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이후 라스베이거스 방문객 추이.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 사태 이후 처음으로, 2025년 상반기 방문객 수가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 인베스토피디아

 


글로벌 전시 허브의 재편과 한국의 전략적 기회

미국의 전시산업은 자국 중심의 정책 변화로 구조적 변환기를 맞고 있다. CES, SXSW(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 NAB 등 세계적 전시회들은 여전히 높은 위상을 유지하고 있지만, 국제 참가자들의 입국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산업 전반에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항공·숙박·운송·물류·외식 등 연관 산업이 동반 타격을 입으며 미국 전시산업의 경쟁력 또한 점차 약화되는 모습이다. 이에 미국 정부기관과 지자체, 그리고 주요 행사 주최 측은 비자 절차 안내 강화와 보안 프로세스 개선을 통해 대응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국제 참가자들의 심리적 장벽은 여전히 높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정책의 안정성과 개방성 회복에 있다. 전시산업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세계 경제를 연결하는 무역 플랫폼이자 국가 브랜드 신뢰도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국제 전시 허브의 개방성과 신뢰가 흔들리면 그 위상과 신뢰를 회복하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제도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 전시업계의 대응 전략은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우선, 물류비·관세·인건비 상승 등 비용 요인을 반영한 구조 혁신이 요구된다. 한국무역협회(KITA), KOTRA,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는 공동 전시관 운영 모델은 이미 여러 국제 행사에서 비용 절감 효과를 입증했다. 공동 물류망 구축과 전시 자재 통합 조달을 통해 개별 기업의 부담을 줄이고, 한국 브랜드의 집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다만 단순히 기업을 나열하는 형태의 ‘한국관’만으로는 글로벌 전시무대에서 존재감을 확보하기 어렵다. K-푸드, K-전력, K-조선 등 산업별 스토리텔링을 결합한 ‘콘셉트형 전시관’으로 진화해야 한다. 콘텐츠와 서사를 중심으로 한 전시 기획은 브랜드 정체성을 강화하고, 국가 이미지를 함께 각인시키는 효과를 낸다. 또한 글로벌 전시회 참가자의 리스크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 연사 및 바이어 초청 단계부터 비자 서류 패키지를 사전에 완비하고, CTA·ITA(International Trade Association) 기준의 표준화된 비자 가이드를 적용해야 한다. 이제 ‘국제 참가자 리스크 관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 요소다.

마지막으로 현지화된 공급망 구축 역시 중요한 과제다. 라스베이거스, 애너하임 등 주요 전시장 인근에 장기 협력 파트너십을 확보해 부스 자재, 운송, 인력 등을 현지에서 조달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샌프란시스코의 한 AV 업체 관계자는 “내년 CES 전시에 참가하려는 한국 기업들의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는 미국의 정책 리스크를 관리 가능한 비용 구조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정치적 변화는 빠르지만, 산업 신뢰의 회복은 시간과 제도의 축적을 필요로 한다. 지금 세계는 미국의 개방성과 신뢰성을 다시 평가하고 있다. 이는 한국 전시산업이 ‘효율성·신뢰도·전문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글로벌 전시 전략을 재정립할 결정적 시기임을 의미한다. 현재의 불확실성은 위기이자 동시에 기회다. 글로벌 기업들은 ‘정치적 중립성’, ‘정책 안정성’, ‘운영 효율성’을 갖춘 새로운 전시 허브를 찾고 있다. 한국은 이미 K-테크, K-콘텐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신뢰의 자산을 축적해 왔다. 이제 그 신뢰를 전시산업 인프라로 확장해야 할 때다.

전시산업의 본질은 세계 경제 주체들이 신뢰를 기반으로 만나는 장이다. 만약 미국이 그 신뢰의 기반을 약화시킨다면 글로벌 전시의 중심축은 이동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새로운 중심에 한국이 설 가능성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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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 2025 전시장 실내 모습 © C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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