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주관 전시회 IP가 곧 경쟁력이다
-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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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이야기와 산업을 ‘전시’로 설계하는 힘
산업을 이해하고 콘텐츠로 풀어낼 수 있는 인재 필요
전시컨벤션센터의 경쟁력은 무엇으로 결정될까. 시설의 규모일까, 접근성일까, 아니면 호텔과 관광 인프라일까. 물론 모두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전시산업 시장에서 경쟁의 기준은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이제는 ‘얼마나 많은 행사를 유치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강력한 전시회를 만들어 내는가’로 평가된다. 즉, 경쟁의 축이 ‘유치’에서 ‘콘텐츠 생산’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글 | 홍주석 수원컨벤션센터 마이스사업팀장

지붕 없는 박물관’이란 도시 정체성을 기반으로 ‘2025 APEC 정상회의’를 성공리에 마친 천년고도 경주 © 한국관광공사
유치의 시대를 넘어 ‘전시회 IP’의 시대로
그동안 많은 국내 전시컨벤션센터는 국제회의와 전시회 유치에 집중해 왔다. 하지만 유치 중심 전략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외부 전시 주최자 의존도가 높고 지속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시와 산업 간 연결도 충분하지 않다. 행사는 열리지만 성과가 지역에 축적되지 않는 구조다.
이 한계를 넘어서는 해법이 바로 ‘전시회 IP(Intellectual Property, 지적 재산)’다. 자체 기획 전시회를 뜻하는 전시회 IP는 단순한 일회성 행사가 아니다. 전시컨벤션센터가 직접 전시회를 기획하고, 산업을 연결하며, 행사 고유의 방향성과 브랜드를 구축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전시회는 산업 생태계를 연결하는 플랫폼이 된다. 또한, 참가업체와 바이어를 이어 주는 시장이 되는 동시에 도시 브랜드를 만드는 핵심 콘텐츠로 확장된다. 결국 전시회 IP는 전시컨벤션센터가 스스로 경쟁력을 만들어 내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성에서 출발한 콘텐츠만이 경쟁력을 가진다
그렇다면 어떤 전시회를 키워야 할까. 답은 명확하다. 그 지역에서만 구현할 수 있는 전시회다. 이러한 지역성의 힘을 가장 직관적으로 느끼고 참고할 만한 사례로 김포 애기봉 평화생태공원을 들 수 있다. 이곳은 북한과 불과 1.4km 떨어진 군사 접경지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방문객은 군 검문소를 거치고 사전 예약을 해야만 방문할 수 있다. 일반 관광지라면 치명적인 제약일 수 있지만 이곳은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을 끌어 모으고 있다. 그 중심에는 스타벅스가 있다. 애기봉 매장은 단순한 카페가 아니다. 분단의 역사와 정치적 긴장, 평화의 메시지가 공존하는 ‘콘텐츠 공간’이다. 북한 개풍군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는 경험 자체가 하나의 서사가 된다. 실제로 개점 이후 방문객은 평일에는 몇 배 수준, 주말에는 수천 명 규모로 늘어나며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다.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바로 그곳’이기 때문에 방문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전국적으로 수많은 지자체가 스타벅스 유치에 나섰지만,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단순한 브랜드 입점만으로는 흥행을 보장할 수 없다. 스타벅스가 선택한 전략은 ‘특화 매장’이다. 제주 송당파크R점, 강릉 안목해변점처럼 지역의 자연과 문화, 역사성을 공간에 녹여 내며 매장을 하나의 관광 콘텐츠로 만든다. 전 세계 약 3만5천 개 매장 중 애기봉 매장은 스토리텔링 측면에서 가장 상징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이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장소의 맥락이 콘텐츠가 될 때 불편함조차 특별한 경험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전시회도 마찬가지다. 어디에서나 열 수 있는 전시회는 경쟁력이 약하다. 그 지역이기 때문에 열려야 하는 전시회여야 사람과 산업을 끌어당길 수 있다.

국내외 관광객에게 ‘북한 뷰 스타벅스’로 K-관광 명소가 된 애기봉전망대 스타벅스 © 홍주석, 김포시
산업과 연결될 때 확장되는 전시회
전시회 IP는 지역 산업과 결합할 때 더욱 강한 생명력을 가진다. 산업 기반과 맞물린 전시회는 단순한 행사 수준을 넘어 지속 가능한 플랫폼으로 발전한다.
부산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 준다. 최근 부산은 해양·물류 기반 산업을 바탕으로 드론과 UAM(도심항공모빌리티)을 미래 전략 산업으로 설정하는 동시에 이를 전시회와 비즈니스 플랫폼으로 연결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DSK(드론쇼코리아)’다. DSK는 단순한 기술 소개를 넘어 드론·방산·스마트시티·물류 산업이 융합된 아시아 최대 규모 드론 전문 전시회로 성장했다. 매년 수백 개의 참가업체와 수만 명의 참관객이 모여들며 국내외 바이어 상담, 국방·공공 조달 연계, 실증사업 협력 등 실질적인 비즈니스 성과도 창출하고 있다. 특히 항만·물류 도시라는 부산의 특성을 바탕으로 해양 드론, 항만 모니터링, 물류 자동화 등 실증 중심 산업을 확대하고 있다. 전시회가 도시 전략 산업을 성장시키는 플랫폼으로 작동하는 대표 사례다. 부산은 이를 통해 ‘드론 산업 도시’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하고 있다.
수원의 반도체 패키징 산업도 같은 흐름이다. 최근 반도체 산업은 전공정 중심에서 후공정, 특히 패키징 기술의 중요성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 AI, 자율주행, 고성능 컴퓨팅 환경에서는 칩을 얼마나 작게 만들었느냐보다는 여러 칩을 어떻게 연결하고 집적하느냐가 성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패키징 기술 투자를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ASML과 같은 핵심 장비 기업도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을 넓히고 있다. 수원컨벤션센터가 추진하는 ‘차세대 반도체 패키징 산업전’은 이러한 산업 변화에 대응한 전략 전시회로 엔비디아(NVIDIA), 대만 (ASEASE), 미국 앰코(Amkor) 등 글로벌 기업과의 연계 가능성을 확대하고 있다. 또한 ISIG Executive Summit Korea와의 협력적 연계를 통해 글로벌 반도체 네트워크와 접점도 구축하고 있다. 기술, 기업, 투자, 정책이 연결되는 산업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부산 ‘DSK(드론쇼코리아)’ 현장 © 벡스코 수원 ‘차세대 반도체 패키징 산업전’ 현장 © 수원컨벤션센터
산업·도시 전략과 결합한 글로벌 전시회 모델
해외에서도 이러한 구조는 더욱 명확하게 나타난다. 독일 하노버에서 개최되는 ‘하노버 메세(Hannover Messe)’는 약 6,000개의 참가업체와 20만 명 이상의 참관객이 모이는 세계 최대 산업기술 전시회다. 이 전시회는 독일 공기업 성격의 전시기관이 직접 기획·운영하는 구조를 바탕으로 제조, 자동화, 에너지, 디지털 산업을 통합적으로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그 결과 산업 의제와 기술 트렌드를 선도하고, 국가 경쟁력 강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살로네 델 모빌레(Salone del Mobile)’ 역시 산업과의 결합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 전시회는 이탈리아 가구·목재산업협회(FederlegnoArredo)가 주최하고, 전시장 운영기관(Fiera Milano)이 협력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산업협회가 주도적으로 전시회의 방향성과 콘텐츠를 설계하고, 전시장은 이를 구현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러한 역할 분담 속에서 살로네 델 모빌레는 단순한 가구 전시를 넘어 디자인 산업 전반을 이끄는 글로벌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동시에 밀라노를 ‘세계 디자인 수도’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국내에서는 경주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경주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불릴 만큼 풍부한 역사와 문화유산이 집적된 천년고도이다. APEC 정상회의 개최 도시로서 국제적 위상도 갖추고 있다. 이러한 도시 정체성을 기반으로 경주는 수년째 ‘세계국가유산산업전’을 개최하며 문화유산을 산업과 연결하는 시도를 이어 가고 있다. 전시회를 통해 문화유산의 보존·활용 기술, 콘텐츠 산업, 관광 비즈니스가 확장되며, 도시의 역사적 자산은 경제적 가치로 전환된다. 전시회가 도시 브랜드를 강화하는 동시에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독일 하노버 ‘하노버 메세’ 현장 © HANNOVER MESSE

이탈리아 밀라노 ‘살로네 델 모빌레’ 현장 © SALONE DEL MOBILE

경주 ‘세계국가유산산업전’ 현장 © 홍주석
반복이 만드는 자산, 그리고 수익 구조의 변화
전시회 IP는 단순한 산업 간 연계를 넘어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힘을 가진다. 지리적 여건이 불리하더라도 콘텐츠 경쟁력이 확보되면 사람과 기업은 이동한다. 전시장 규모가 제한적이더라도 자체 전시회 IP를 통해 새로운 수익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참가업체 대상 부스 판매, 프로그램 운영, 파트너십 협업 등을 기반으로 공간 제약을 넘어서는 경제적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전시회 IP의 핵심 경쟁력은 ‘축적’에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브랜드 인지도는 높아지고, 글로벌 네트워크는 넓어진다. 참가업체와 바이어 데이터도 지속적으로 쌓인다. 기존의 국제회의 및 전시회 유치 중심 구조는 공간과 일정에 의존하는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반면 전시회 IP는 보다 안정적인 수익 모델을 만들 수 있다. 부스 판매를 중심으로 다양한 수익원이 결합되면서 점진적인 성장 구조를 형성한다. 동시에 전시회 운영만이 아니라 콘퍼런스 기획, 콘텐츠 설계 등 다양한 부가사업이 확대되면서 조직의 역할도 확장된다. 단순한 공간 운영 조직을 넘어 콘텐츠 기획과 생산 주체로 전환되는 흐름을 보인다.
전시회 IP의 출발점, 결국 ‘사람’이다
그렇다면 전시회 IP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전문 인력이다. 단순한 운영 인력이 아니라 산업을 이해하고 시장을 읽으며 콘텐츠를 설계할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하다. 전문 전시회는 산업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다. 산업 구조와 참가업체의 수요, 글로벌 트렌드를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경쟁력 있는 전시회가 탄생한다. 이러한 인력 기반이 구축되면 결국 조직의 성장으로 이어진다. 전시회가 잘되면 센터의 수익성 개선과 사업 확장도 함께 이루어진다. 궁극적으로 전시컨벤션센터의 경쟁력 자체를 끌어올리는 구조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전시회 IP의 소유권이다. 자체 기획 전시회는 브랜드와 네트워크, 운영 노하우를 모두 내부에 축적할 수 있다. 외부로 쉽게 이전되지 않는 자산이 되는 것이다. 결국 전시회 IP는 센터의 장기적 경쟁력을 확보하는 기반이 된다.
도시의 정체성을 만드는 전시회
지역 특화 전시회는 단순한 산업 행사를 넘어 도시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 수단으로 작용한다. 특정 산업 전시회가 지속적으로 개최되면, 해당 도시는 자연스럽게 그 산업의 중심지로 인식된다. 이는 기업 유치와 연구기관 집적, 인재 유입으로 이어진다. 결국 전시회는 이벤트를 넘어 도시의 산업 구조와 이미지를 동시에 설계하는 전략적 플랫폼이다.
전시컨벤션센터의 역할도 변화하고 있다. 더 이상 공간 제공자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제는 콘텐츠를 기획하고, 산업을 연결하며, 도시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플랫폼 운영자로 진화하고 있다. 경쟁력의 기준도 달라졌다. 얼마나 많은 행사를 유치했는지가 아니라 어떤 전시회를 만들어 냈는지가 중요하다. 전시회 IP가 곧 전시컨벤션센터의 경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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