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리포트] 전시회의 경계를 넓히다: 도시, 하나의 베뉴가 된 ‘SXSW 2026’
전시장 밖 도시 공간에서 찾은 전시회의 새로운 가능성
SXSW에서 살펴본 도시형 전시 모델의 운영 과제
전시장은 대개 하나의 건물로 기억된다. 참관객은 홀을 따라 부스를 둘러본 뒤 전시장을 나선다. 규모가 큰 전시회는 여러 전시장을 연결하지만 도시 전체가 행사의 무대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 점에서 SOUTH BY SOUTHWEST(이하 SXSW)는 이 익숙한 문법에서 한걸음 벗어나 있다. 1987년 지역 음악 쇼케이스로 출발한 SXSW는 도시 곳곳에서 전시와 콘퍼런스, 음악 축제가 어우러지는 융복합 비즈니스 이벤트로 발전해 왔다. 국내 전시산업에서도 대표적인 벤치마킹 대상으로 꼽힌다.

글·사진 | 박효연 전남대학교 문화관광경영학과 교수


현재 재건축 중인 오스틴 컨벤션센터 외관(2024년) © SHUTTERSTOCK
올해 40주년을 맞은 ‘SXSW 2026’은 1993년부터 행사의 거점 역할을 해 온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컨벤션센터가 재건축(2029년 재개관 예정)에 들어가면서 도시 전체를 하나의 베뉴로 활용해 열렸다. 한 대담 세션에서 SXSW 최고 사업책임자(CCO) 피터 루이스(Peter Lewis)는 “1987년 첫 행사 때에도 컨벤션센터는 없었다”라며 “어떤 면에서 우리는 뿌리로 돌아간 셈”이라고 말했다. 필자 역시 올해 처음 방문한 만큼 컨벤션센터가 있던 시절과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거점 건물의 부재가 현장에서 크게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도시 곳곳이 이미 그 역할을 나누어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7일간의 행사, 세 개의 클럽하우스, 무대가 된 도시
SXSW 2026은 지난 3월 12일부터 18일까지 7일간 열렸다. 예년보다 이틀 짧아진 일정 속에서 그동안 시차를 두고 진행되던 3개의 중심축인 Innovation, Film & TV, Music 프로 그램이 같은 기간에 펼쳐졌다. 교육 콘퍼런스인 SXSW EDU는 이에 앞서 3월 9일부터 12일까지 진행됐다. 행사는 도심 약 75개 장소에서 열렸으며, 850개 이상의 세션과 600개의 네트워킹 행사, 450개의 브랜드 행사가 운영됐다.
컨벤션센터를 대신한 것은 분야별 거점인 ‘클럽하우스(Clubhouse)’였다. Film & TV 클럽하우스는 다운타운 북쪽에, Music 클럽하우스는 북동쪽에, Innovation 클럽하우스는 중심가에 자리했다. 등록 공간과 전시장, 세션장은 주로 다운타운 남동쪽에 배치됐다. 마치 세 핵심 주제를 중심으로 다운타운 곳곳에 작은 마을이 만들어진 듯했다.
이 구조를 가장 먼저 실감한 것은 발밑의 안내 표시였다. 보도 곳곳에는 베뉴 이름과 방향, 날짜를 함께 적은 바닥 사인이 붙어 있었다. 음악 공연과 쇼케이스의 중심지인 6번가의 밤거리에는 배지(Badge) 소지자를 위한 대기 동선이 표시돼 있었고, 전봇대는 공연 리플릿으로 도배돼 있었다. 도시의 길과 구조물 자체가 행사의 안내 체계가 된 셈이다.

분야별 거점으로 운영된 SXSW 클럽하우스

도시 곳곳에 붙어 있는 행사(동선) 안내 표시
걷는 수고로움, 길 위에서 만나는 뜻밖의 즐거움
메인 전시인 SXSW Expo는 페어몬트(Fairmont) 호텔의 맨체스터 볼룸(Manchester Ballroom)에서 열렸다. 사실 전시회라고 부르기에는 규모가 작았지만, 기술·디자인·엔터테인먼트 기업과 각국 기관들이 부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더 인상적인 것은 전시장 밖이었다. 각국의 국가관은 도심의 펍(Pub)과 바(Bar), 이벤트 공간을 빌려 문을 열었다. 독일 하우스(German Haus)는 독일 음악 수출기관과 스타트업 지원기관이 함께 꾸린 공간으로, 스타트업 부스와 공연을 한곳에 담았다. 아일랜드 하우스(Ireland House)는 펍 형태의 공간을 그대로 국가관으로 활용했다.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는 ‘SXJP’라는 브랜드로 음악 공연과 스타트업 피칭, 스시와 사케 시음을 한자리에 엮었다.
도로도 전시장으로 변모했다. 콩그레스 애비뉴(Congress Avenue) 일부 구간은 차량 통행이 제한돼 보행 공간으로 바뀌었고, 900블록에서는 배지 소지자와 시민 모두에게 개방된 파티가 열렸다. 바로 옆 800블록에서는 주요 스폰서인 전기차 기업 리비안(Rivian)이 도로 위에 흙길로 된 오프로드 코스를 조성해 신차 시승 체험을 운영했다.
물론 분산형 구조에는 대가가 따랐다. 장소 간 거리가 생각보다 멀어 이동이 쉽지 않았고, 세션을 연달아 들으려면 동선 계획이 필수였다. 주최 측이 셔틀을 운행했지만, 행사장을 효율적으로 오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SXSW 측도 행사 후 참가자 설문에서 베뉴가 지나치게 흩어져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도심 공간을 활용한 영국·독일·일본 국가관
그럼에도 걷는 시간이 낭비만은 아니었다. 골목을 지나다 방문 예정에 없던 국가관과 브랜드 체험관을 발견하고 들어가 보는 일은 도시 곳곳에 숨겨진 보물을 찾는 것 같은 재미를 주었다. 루이스 역시 SXSW를 즐기는 비결로 “우연을 위한 여백을 남겨 두어라”라고 조언했다. 오전과 오후에 한두 개의 기준 일정만 정하고 나머지는 탐색에 맡기라는 것이다. 이러한 ‘우연한 발견’은 정해진 공간 안에서는 설계하기 어려운 경험이다. 또한 행사는 공식 일정표 밖에서도 계속되고 있었다. 공식 행사장이 아닌 펍과 레스토랑에서도 밤낮없이 다양한 이벤트가 열렸다. 주말인 3월 14일 토요일과 마지막 날인 18일 수요일에는 많은 행사가 배지 없이도 입장 가능했다. 최소 100만 원(USD 800)이 넘는 배지 소유자를 위한 프로그램과 시민을 위한 프로그램이 같은 공간 안에서 날짜를 나누어 운영된 것이다.

도심에 마련된 파라마운트(왼쪽)와 리비안(오른쪽) 기업관
무질서 속의 질서, 무엇을 느꼈나
겉으로 보면 SXSW는 무질서하다. 같은 시간 도시 곳곳에서 전시회와 콘퍼런스, 음악 쇼케이스, 영화 상영, 브랜드 체험이 펼쳐지고, 참가자는 저마다 다른 동선을 그린다. 혁신, 영화·TV·코미디, 음악이라는 서로 다른 분야가 어떤 연결고리로 하나의 행사에 묶이는지도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이에 대해 SXSW 관계자는 음악 산업에서 출발한 행사가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영화·TV로 영역을 넓혔으며, 오늘날 혁신까지 아우르는 것도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이라고 설명했다. 지역과 산업에 무엇이 필요하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그 해답을 행사에 담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참관을 통해 필자가 느낀 바는 다음과 같다. 먼저 베뉴(Venue)의 재해석이다. SXSW는 분야별 클럽하우스를 참가자가 모이는 거점인 ‘홈 베이스(Home Base)’로 조성하고, 나머지 공간은 도시 전역으로 확장했다. 호텔 연회장과 펍, 도로는 오스틴 도심이 가진 저마다의 공간적 개성에 콘텐츠를 더해 단일 전시홀이나 팝업 부스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이러한 방식은 최근 다른 국제행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밀라노디자인위크(Milan Design Week)에서는 밀라노 가구박람회(Salone del Mobile)를 중심으로 같은 기간 도심 곳곳에서 1,000건이 넘는 장외 행사인 ‘푸오리살로네(Fuorisalone)’가 펼쳐진다. 가구 산업의 경계를 넘어 패션, 자동차, 테크 등 다양한 산업군이 참여하며, 전시장은 거래의 중심을, 도시는 경험의 무대를 나누어 담당하는 구조다. 현장 경험이 참관객을 유인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 시대에 이러한 구조적 확장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전시 공간 확보에 제약이 있는 국내 전시업계에서도 전시장을 중심으로 인근 호텔과 공연장, 상업시설을 엮어 행사 공간을 넓히는 방식을 고민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전시주최자의 역할 역시 개별 행사 기획을 넘어 도시 공간을 연결하고 새로운 경험을 설계하는 방향으로 확대될 것이다. 다만 공간이 분산되면 이동에 따른 시간과 비용이 발생한다. 교통수단과 관람 동선을 고려한 이동 계획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도시 전체가 전시장’이라는 구상은 자칫 ‘도시 전체가 미로’가 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경계를 넘는 경험, 도시와 산업을 잇는 힘
이러한 공간적 확장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SXSW의 진정한 강점인 콘텐츠와 프로그램 형식의 다양성, 그리고 분야 간 자연스러운 연결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필자의 하루 역시 오전에는 콘퍼런스로 시작해 오후에는 국가관 등 브랜드관, 저녁에는 쇼케이스 공연으로 채워졌다. 전시회·콘퍼런스·브랜드 체험·문화 콘텐츠가 도시 전역에서 동시에 펼쳐지니 산업 간 경계는 동선 안에서 자연스럽게 허물어졌다. 누군가에게는 전시회와 콘퍼런스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음악 공연과 쇼케이스가 행사의 중심이 됐으며, 참가자들은 저마다의 목적에 따라 새로운 경험과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한편, 아쉬운 점도 있었다. K-컬처에 대한 세계적 관심에 비해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한국의 존재감은 엑스포 내 부산국제록페스티벌과 아트코리아랩 부스, 일부 세션의 토론자 참여 정도에 그쳤다. 콘텐츠 해외 진출을 위해 국가관을 꾸린 여러 나라와 대비되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SXSW 2026을 통해 분명히 확인한 것은 전시회의 경계가 건물의 벽을 넘어 콘텐츠가 닿는 도시 곳곳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공간과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경험을 설계하고 참여를 이끄는 일은 MICE 산업이 도시와 함께 성장하기 위한 중요한 조건이 되고 있다. 이를 실현하려면 참가업체와 지역 베뉴 파트너의 역량을 모으고, 지역사회의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선행되어야 할 것은 SXSW처럼 행사라는 플랫폼을 통해 지역과 산업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 해답을 찾아 나가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일 것이다.
<참고문헌>
Austin Chronicle. “South by Southwest 2026 Reduces to Seven Days.”
Austin Chronicle. “Concerts, Posters, and Expos Open to the Public at SXSW 2026.”
Fuorisalone.(2026). “Fashion brands at Design Week 2026.”
Salone del Mobile.Milano.(2026). “Salone del Mobile.Milano 2026: this is how it went.”
Skift Meetings.(2026.3.11). “SXSW 2026 Under Pressure to Deliver.”
Skift Meetings.(2026.9.23). “Skift Meetings Forum 2026: What Austin and SXSW Learned.”
이데일리(2026.3.20.). ‘아트코리아랩, SXSW 2026 참가…’ 국내 예술기업 융합 콘텐츠 소개
VOL.133(202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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