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오래된 미래] 디지털 전시의 역사

  • 작성자 사진: 준걸 김
    준걸 김
  • 2024년 9월 9일
  • 4분 분량

백남준에서 생성형 AI 기술까지

ree

글·사진┃이형주 대표

VM Consulting, 한림대학교 겸임교수


디지털 전시의 초기에는 텔레비전과 같은 전자 매체를 활용한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인터랙티브 아트 등 다양한 기술이 전시에 도입되었다. 오늘날에는 생성형 AI 기술이 디지털 전시에 큰 혁신을 가져오며, 관람객과 실시간 상호작용을 통해 콘텐츠를 생성하거나 변화시키는 경험까지 제공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이렇듯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며 끊임없이 혁신을 거듭하는 디지털 전시의 역사에 대해 알아본다.

ree

TV 첼로(백남준, COURTESY OFTHE BLOCK MUSEUM) 출처 Takahiko iimura


제주도 서귀포시에 있는 본태 박물관은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Ando Tadao)’의 조형미를 느낄 수 있는 건축물과 더불어 전 세계 유명 작가들의 진귀한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2층에 올라서면 벽 한구석에 홀연히 브라운관의 빛을 뿜어내며 고고하게 서 있는 예술 작품이 있다. 바로 미디어아트의 선구자, 백남준의 ‘TV 첼로’다. 이 작품은 첼로 연주 장면이 방영되고 있는 세 개의 텔레비전을 쌓아 올리고 그 앞에 첼로 현을 달아 만든 하나의 오브제다. 실제로 1964년 백남준은 독일에서 열린 그의 첫 개인전에서 이 TV 첼로를 선보여 당시 예술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1960년대, 디지털 전시의 역사가 시작되다

백남준이 활동했던 1960년대는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고 여겨져 온 예술 분야에서 디지털 기술이 접목된 최초의 시대였다. 그전까지는 디지털 기술이 인간의 필요성에 의해 개발되어 주로 군수 물자 생산과 제품 개발 등 산업 분야에서 쓰였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자본주의가 본격적인 풍요의 시기를 누리며 디지털 기술에 의한 예술 경험의 확장이 시작되었다.

디지털 기술이 예술 영역에서 가장 효과를 발휘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 전시일 것이다. 전시는 작가의 창작물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하나의 마켓으로 그들이 명성과 수입을 얻는 기회를, 대중들에게는 일상에서 접할 수 없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해 왔다. 특히 디지털 전시는 아날로그의 한계를 뛰어넘는 상상력을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의 생각을 확장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8~90년대, 컴퓨터 아트와 멀티미디어 전시 급부상하다

1960년대가 디지털 전시의 시작을 알리는 시대였다면 1980년대에서 1990년대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함께 예술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시기다. 즉 컴퓨터 아트와 멀티미디어 전시가 본격적으로 부상하던 때였다. 이 시기의 예술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전통적인 예술 경계를 넘어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탐구했다. 컴퓨터 아트와 멀티미디어 전시는 단순히 기술을 활용한 예술이 아닌, 기술과 예술의 융합을 통해 인간의 창의성과 상상력을 확장시키는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해 주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컴퓨터 아트 예술가 중 한 명인 해럴드 코헨(Harold Cohen)은 컴퓨터 프로그램 ‘AARON’을 개발하여 컴퓨터가 스스로 그림을 그리도록 했다. AARON은 사람의 개입 없이도 예술 작품을 생성하는 알고리즘을 사용해, 컴퓨터가 창의적 과정에 참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컴퓨터아트의 영역을 크게 확장시켰으며, 예술 창작에서 디지털 기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이렇듯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 걸쳐 멀티미디어 전시가 대두되면서 예술가들은 단순히 하나의 매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매체를 결합하여 복합적인 경험을 창출해내기 시작했다. 비디오, 음악, 텍스트, 컴퓨터 그래픽, 인터랙티브 요소 등 다양한 매체가 결합된 멀티미디어 전시는 관객에게 다차원적인 감각적 경험을 제공하며 전통적인 전시 방식의 한계 또한 뛰어넘도록 했다.

ree

 컴퓨터 아트 예술가 ‘헤럴드 코헨’과 ‘A ARON’ 출처 https://www.sandiegouniontribune.com

대형 미디어아트 전시, 관객몰이에 성공하다

이후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전시는 대형 미디어아트로 발전된다. 미디어아트는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시각적 경험을 제공하는 현대 예술의 한 분야다. 특히 대형 미디어아트 전시는 관객에게 강렬하고 몰입적인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중에서도 일본의 아티스트 콜렉티브 팀랩(teamLab)은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대표적인 미디어아트 그룹으로, 그들의 대형 전시는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며 새로운 차원의 예술적 경험을 선사해주었다. 특히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인 ‘팀랩 보더리스(teamLab Borderless)’ 전시는 2018년 도쿄 오다이바에 개관한 모리 빌딩 디지털 아트 뮤지엄에서 처음 선보였다.

이 전시는 10,000m2에 달하는 공간에 수많은 디지털 아트 작품을 전시하여 관객이 작품과 상호작용하며 작품 속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몰입형 경험을 제공해 주었다. 전시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팀랩 보더리스는 ‘경계 없는 예술을 지향하며, 관객이 하나의 작품에서 다른 작품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하면 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가상현실과 같은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이어졌으며, 전시의 형태를 더욱 혁신적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ree

‘팀랩 보더리스’ 전시 모습 출처 www.teamlab.art 

ree

아트 바젤의 OVR 화면 출처 fadmagazine.com

 

가상현실(VR)의 등장, 현실의 경계를 허물다

멀티미디어를 활용하던 디지털 전시는 이제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등 공간의 확장 기술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전시를 창조하고 있다. 이 기술들은 기획자의 창작 과정을 보조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개입 없이도 독창적인 전시를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러한 새로운 기술이 주도하고 있는 형태는 전통적인 전시의 개념을 재정의하고, 기획자로서 인간의 역할에 대해 깊은 성찰을 요구하도록 했다.

세계 최대의 전통적인 현대미술 박람회 중 하나는 ‘아트 바젤(Art Basel)’이다. 전 세계의 주요 갤러리와 예술가들을 한자리에 모아 작품을 선보이는 행사로 유명하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로 물리적 전시가 어려워지자 아트 바젤은 혁신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온라인 뷰잉 룸(Online Viewing Rooms, 이하 OVR)이다. OVR은 가상현실 기술을 통해 예술 전시를 디지털 공간으로 옮겨 전통적인 아트페어를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처럼 아트 바젤의 OVR은 물리적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전 세계 어디서든 인터넷만 연결되면 누구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디지털 플랫폼이다. 단순한 온라인 갤러리가 아니라 VR 기술을 활용해 실제 전시 공간을 가상으로 재현함으로써, 관람객이 마치 실제 전시장에 있는 것과 같은 몰입감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생성형 AI, 전시 플랫폼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다

위와 같이 전시산업은 예술과 산업의 경계를 허물고 기술의 발전에 따라 꾸준히 변화해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의 큰 변화 중 하나는 뭐니 뭐니 해도 생성형 AI 도입이다. 생성형 AI는 단순히 전시 콘텐츠를 생성하는 도구를 넘어서 전시 플랫폼 자체의 확장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세계 최대의 가전 및 기술 박람회인 CES(Consumer Electronics Show)다. CES는 생성형 AI를 활용해 전시의 경계를 확장하고, 새로운 형태 플랫폼을 창출함으로써 전시산업의 미래를 제시하고 있다.

‘CES 2023’에서는 생성형 AI를 관람객의 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 전시 경험을 제공하는 데 활용했다. AI는 관람객의 선호도와 행동 패턴을 분석한 다음 그들에게 가장 관련성이 높은 전시 부스를 추천하고 개인화된 전시 경로를 제시했다. 이를 통해 관람객들은 자신에게 최적화된 전시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며, 전시 자체가 더 개인화되고 사용자 중심적으로 발전되었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생성형 AI는 전시회의 글로벌 확장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CES와 같은 대규모 전시는 물리적 공간과 제약된 시간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참석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생성형 AI를 활용한 가상 전시 플랫폼은 이러한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마련해 주었다. CES에서 활용한 AI 기반 가상 전시 플랫폼은 물리적 한계로 전시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관람객들도 전시된 제품과 기술에 대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얻고, 가상 환경에서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렇듯 생성형 AI 전시회는 단순히 특정 장소에서 열리는 행사가 아니라 전 세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글로벌 플랫폼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ree

CES AI 추천시스템 출처 필자 이형주

 

디지털 기술, 다차원적인 전시를 꿈꾸게 하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디지털 기술은 전시의 형태를 변화시키고 있으며 생성형 AI와 같은 혁신 기술은 전시의 글로벌화와 개인화된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전시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편협한 사고와 경험의 한계를 극복하고 물리적 벽을 넘어 교류와 비즈니스의 수단으로 기능해 왔다. 초기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전시부터 디지털 기술이 활용된 아트 바젤, CES와 같은 산업 전시회까지 모두 이러한 목적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미래의 전시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AI를 비롯한 혁신적 기술들은 전시의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며, 인간의 생각과 경험의 경계를 확장할 수 있을 때 그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전시는 참여자가 산업과 예술에 더욱 깊이 연결될 수 있도록 돕고 창의적 사고를 자극하도록 지원한다. 앞으로도 디지털 기술은 시를 더욱 다차원적으로 발전시켜 인간 경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도록 기여하게 될 것이다.

태그:

 
 
 

댓글


footer_logo.png

ISSN 1976-3174(Online)  / ISSN 1976-3239(Print) 

Copyright@AKEI All Rights Reserved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