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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산책] 왜 우리는 그 브랜드를 ‘굳이’ 찾아가는가

  • 작성자 사진: 준걸 김
    준걸 김
  • 7일 전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일 전


유행을 넘어 브랜드 얼굴이 되는 시그니처의 힘

‘브랜드 경험’, 소비자가 다시 찾는 유일한 이유



우리는 왜 어떤 브랜드는 스치듯 지나치면서 어떤 곳은 멀리 돌아서라도 찾아갈까? 그 이유는 단순한 제품의 품질이 아니라 오직 그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시그니처 경험(Signature Experience)’ 때문이다. 시그니처는 브랜드를 평범한 선택지가 아닌, 고객이 시간을 내어 찾아가고 싶게 만드는 최종 목적지(final destination)로 만든다. 브랜드의 차별성과 지속 가능성은 결국 이 경험의 밀도에서 비롯된다.


글 | 김지현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브랜드 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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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디톡스’와 ‘비움’이라는 고밀도 경험을 제공하는 강원도 홍천의 힐리언스 © 힐리언스 선마을 홈페이지




오직 그곳에서만 가능한 경험

최근 몇 해 전, 태국 치앙마이를 여행했을 때 님만해민 거리의 복잡한 골목길을 헤매며 일부러 찾아간 카페가 있다. 월드 라테 아트 챔피언십 우승 바리스타가 운영하는 리스트레잇토(Ristr8to)였다. 치앙마이는 개성 있는 카페들로 넘쳐나지만, 굳이 시간을 들여 이곳을 찾아간 이유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세 개의 실린더 모양 잔에 나뉘어 담겨 나오는 ‘지옥에서 온 샤케라토(Shakerato From Hell)’란 메뉴를 맛보기 위해서였다.

세상에는 두 가지 유형의 카페가 존재한다. 우연히 다른 목적지를 향해 가던 길에 들르게 되는 곳이 있는가 하면, 그 자체가 최종 목적지가 되는 곳도 있다. 후자가 되려면 높은 접근성을 이용해 단순히 길목을 지키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오직 그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대체 불가능한 시그니처가 있어야 한다.

시그니처는 단순히 고객들을 매장으로 끌어들이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동시에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망설이는 고객에게 안심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이 집은 이걸로 유명하니 실패하지 않겠지’라는 믿음을 갖게 하고, 그렇게 쌓인 선택들이 다수의 집단행동을 만들어 내며 마침내 사회적 증거(social proof)가 된다. 소비자는 히트상품, 판매량 1위 등의 브랜드 인기도(brand popularity) 광고물에 반응해 더 열광적으로 소비하고, 시그니처의 존재감은 더 확대되는 것이다.



제품을 넘어 확장된 경험으로

그렇다고 해서 시그니처 경험이 꼭 제품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유형의 경험이 존재할 수 있다. 미국의 드라이브 스루 커피 전문점인 더치브로스(Dutch Bros)를 떠올려 보자. 이곳은 단순한 커피의 품질을 넘어서는 차별적 경험으로 사람들에게 강렬히 각인되며, 스타벅스의 대항마로 불리기도 한다. 실제로 소셜미디어를 뜨겁게 달군 장면이 있었다. 어느 날, 차를 타고 드라이브 스루 창구를 찾은 한 여성이 전날 남편을 잃었다는 사실을 직원들에게 털어놓았다. 그 순간 세 명의 직원이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어 그녀의 손을 잡고 함께 기도했다. 이 모습은 사진과 영상으로 퍼져 언론에까지 보도됐고, 더치브로스가 내세운 핵심 가치인 ‘사랑’을 진짜 경험으로 증명해 보이는 시그니처 스토리가 되었다.

경험은 고객이 머무는 공간에서도 만들어진다. 가끔 가족과 함께 강원도 홍천의 ‘선마을 힐리언스’를 찾는다. 이곳에는 인터넷도, TV도, 전화도 없다.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곧 알게 됐다. 불편함 속에서 오히려 대화가 많아지고 마음이 가벼워진다는 사실을. 흔히 공간을 가득 채워야 기억에 남는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비워 낸 자리에서 더 선명한 경험이 탄생한다. 중요한 것은 공간의 밀도가 아니라 경험의 밀도다. 힐리언스의 시그니처는 바로 ‘비움이 만들어 낸 고밀도의 경험’이었다. 또 다른 유형의 서비스에서 비롯되는 시그니처 경험이다.



유행이 아닌 기억으로 남는 법

흥미로운 것은 시그니처가 언제나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뉴욕을 방문하면 수없이 많은 맛집과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있지만, 그럼에도 시간을 내서 꼭 가 봐야 한다고 추천되는 곳 중 하나가 바로 매그놀리아 베이커리(Magnolia Bakery)다. 이곳은 원래 홀케이크를 만들고 남은 반죽을 버리기 아까워 작은 컵케이크로 구워 판매한 것이 시작이었다. 의외로 이 컵케이크가 큰 인기를 끌면서 매그놀리아의 이름이 알려졌다. 특히 인기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 등장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유행은 오래가지 않았다. 수많은 유사한 가게가 생기면서 차별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고객들은 매그놀리아의 진짜 매력을 다시 발견했다. 바로 바나나 푸딩이었다. 입소문은 빠르게 퍼졌고 지금은 매그놀리아 하면 컵케이크가 아니라 바나나 푸딩을 떠올린다. 특히 맨해튼에 위치한 1호점은 ‘원조 맛’을 보려는 사람들로 늘 붐비며, 여전히 뉴욕 여행의 필수 코스로 꼽힌다. 이처럼 시그니처는 시대와 고객의 마음을 따라 새롭게 자리 잡기도 하며, 그렇기 때문에 브랜드는 끊임없이 고객과 소통하고 행동을 관찰하면서 변화의 흐름을 읽고 적절히 대응해 나가야 한다.

한편 시그니처가 반드시 매출 1위를 차지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매출이 주력 상품에 비해 뒤처진다고 해서 섣불리 단종시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시그니처는 매출 성과를 넘어 브랜드의 얼굴이자 철학을 드러내는 자산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빙그레의 바나나맛 우유는 전체 유제품 매출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독특한 병모양과 스토리 덕분에 소비자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브랜드의 상징이 되었다.

시그니처 경험을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대표 상품’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브랜드가 고객의 마음 속에 남기고 싶은 기억을 설계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브랜드는 소비자에게 무엇을 팔 것인가보다, 소비자가 어떤 기억을 갖게 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일관성’과 ‘고객의 주도권’이다. 시그니처는 기업이 아닌 고객이 정한다. 또한 브랜드의 가치와 철학에 공감하고 반복적인 경험을 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결국 시그니처 경험은 ‘차별화된 제품’의 결과가 아니라, 브랜드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와 기억의 축적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뉴욕 여행의 필수 코스인 매그놀리아 베이커리의 인기 메뉴      바나나 푸딩과 컵케이크 © www.magnoliabakery.com
뉴욕 여행의 필수 코스인 매그놀리아 베이커리의 인기 메뉴 바나나 푸딩과 컵케이크 © www.magnoliabake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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