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나우] 그 순간, 그 브랜드가 떠오르는 이유, 강력한 브랜드의 ‘장면’ 설계법은?
소비자의 삶과 브랜드를 연결하는 ‘장면 설계’의 힘
제품보다 소비하는 순간에 주목한 브랜드 사례
제품과 로고를 앞세우지 않고도 브랜드를 떠올리게 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은 소비자의 일상과 브랜드를 연결하는 ‘장면 설계’에 있다. 다양한 브랜드 캠페인 사례를 통해 그 원리를 살펴보고, 생성형 AI 시대의 브랜드 전략과 전시장 밖에서도 기억되는 공간 마케팅의 방향을 짚어 본다.
글 | 김지헌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브랜드 심리학자

‘코크스틱스(CokeSticks)’는 코카콜라의 컨투어 병 모양을 본뜬 젓가락으로 일상의 식사 장면에 브랜드를 연결했다 © Ogilvy Apac
제품을 보여 주는 대신, 삶의 장면 속으로
콜라를 광고하려면 무엇을 보여 줘야 할까? 얼음이 가득 든 잔에 콜라가 부어지는 모습이나 빨간색 로고를 떠올리기 쉽다. 그런데 최근 코카콜라는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콜라 대신 빨간색 젓가락을 보여 준 것이다. 동남아시아에서 진행된 ‘코크스틱스(CokeSticks)’ 캠페인은 코카콜라의 상징적인 컨투어 병(Contour Bottle) 모양을 본뜬 젓가락을 식당과 길거리 음식점, 배달 서비스 등에서 활용했다. 서구 음식을 먹을 때와 달리 아시아 음식을 먹을 때에는 코카콜라가 자연스럽게 떠오르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아시아 음식에도 코카콜라가 잘 어울립니다”라고 말하는 대신, 사람들이 음식을 먹을 때마다 사용하는 도구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제품을 더 많이 보여 주는 대신 제품을 소비하는 장면을 선택했다.
최근에는 이처럼 브랜드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나는 광고가 눈에 띈다. 제품을 지우고, 브랜드명을 줄이고, 때로는 로고까지 없앤다. 대신 그 빈자리를 소비자의 삶 속 장면으로 채운다. 2026년 호주에서 진행된 맥도날드의 ‘You Know Where’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광고에는 햄버거도, 매장도, 로고도, 맥도날드라는 이름도 없다. 대신 고급 레스토랑 밖에는 ‘Room for dessert?’, 장거리 도로에는 ‘Busting?’이라는 짧은 문구가 등장한다. 늦은 밤에는 ‘After the after party’라는 문구로 말을 건넨다. 디저트가 당기는 순간, 이동 중 잠시 쉬고 싶은 순간, 파티가 끝난 늦은 밤을 건드리고 ‘You Know Where’라고 말할 뿐이다.
이 캠페인의 핵심은 로고를 지웠다는 데 있지 않다. 특정한 상황만으로도 브랜드가 떠오를 만큼 소비자의 기억 속에 강한 연결고리를 만들어 놓았다는 데 있다. 좋은 브랜드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기억의 공간을 먼저 차지한다. 브랜드를 떠올리게 하는 단서는 로고, 색상, 패키지처럼 눈에 보이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특정한 시간, 장소, 상황도 의미 있는 단서가 될 수 있다.
필요한 순간을 넘어, 원하게 되는 순간으로
IKEA의 ‘Wherever Life Goes’ 캠페인은 이를 삶의 변화로까지 확장한다. 광고의 주인공은 소파나 침대 같은 가구가 아니라 연인의 키스, 이사를 앞둔 사람의 눈물, 쌍둥이의 초음파 사진처럼 삶이 바뀌기 시작하는 순간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IKEA가 제품은 물론 브랜드 로고조차 한쪽 구석으로 물리고, 그 자리에 익숙한 ‘가격표’를 내세웠다는 점이다. 키스 장면에는 더블베드의 가격표가, 이사를 앞두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는 이사 박스의 가격표가 붙는다. 가격표는 더 이상 가격을 알려 주는 표식이 아니라 ‘이제 당신의 집에 이런 변화가 필요해질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브랜드의 단서가 된다. IKEA는 가구를 보여 주지 않고도 가구가 필요해지는 순간을 보여 준 것이다. 브랜드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난 자리를 소비자의 삶이 채운 셈이다.
한발 더 나아가 브랜드는 제품이 필요한 순간뿐 아니라 제품을 원하게 되는 순간을 차지할 수도 있다. 국내 여행 플랫폼 ‘여기어때’와 콘텐츠 제작사 ‘블랙페이퍼’가 함께 기획한 ‘72시간 소개팅’은 처음 만난 두 사람이 낯선 여행지에서 3일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알아 가는 과정을 담는다. 그런데 정작 콘텐츠에는 여기어때의 로고나 서비스 설명, 예약을 권하는 메시지가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낯선 거리를 함께 걷고,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씩 가까워지는 여행의 순간을 오래 보여 준다. 중요한 것은 어느 숙소를 예약할 것인가가 아니다. 콘텐츠를 보고 ‘나도 저렇게 떠나고 싶다’라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여행 플랫폼이 흔히 경쟁하는 지점은 검색과 가격 비교, 예약의 단계이지만, 여기어때는 그보다 한발 앞선 ‘여행을 떠나고 싶어지는 순간’으로 들어갔다. 상품을 보여 주기 전에 상품을 찾게 만드는 욕구의 장면부터 차지한 것이다.
소비자의 상황과 브랜드를 연결하는 전략은 생성형 AI 시대에도 의미가 있다. 사람들은 이제 AI에게 단순히 ‘좋은 여행가방을 추천해 줘’라고만 묻지 않는다. ‘해외 출장이 잦고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 사람에게 적합한 가방’처럼 자신의 상황과 목적을 함께 설명한다. 브랜드가 누구의 어떤 상황에서 무슨 필요를 해결하는지 명확할수록 AI 역시 그 브랜드를 특정한 맥락과 연결하기 쉬워진다. 다만 오프라인에서 멋진 장면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경험이 콘텐츠와 후기, 사용 사례 등을 통해 온라인에도 축적되어야 한다. 사람에게는 경험할 수 있는 장면을 만들고, AI에게는 해석할 수 있는 맥락을 남겨야 한다.
전시장 밖에서도 떠오르는 브랜드 설계법
이러한 관점은 특히 전시회와 공간 마케팅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전시회 참가를 준비할 때 기업은 대개 무엇을 더 보여 줄지를 고민한다. 더 큰 로고, 더 많은 제품, 더 화려한 영상과 자세한 기술 설명으로 한정된 공간을 채운다. 하지만 참관객이 전시장을 떠나는 순간 그 모든 것이 함께 사라진다면, 전시장 안의 공간은 차지했어도 참관객의 기억은 차지하지 못한 셈이다.
좋은 전시회는 전시장 안에서 끝나는 경험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시장 밖의 일상과 연결되는 기억의 단서를 심는 일이다. 그래서 공간을 설계하기 전에 질문부터 바꿔야 한다. ‘전시장을 떠난 참관객이 어떤 순간에 우리 브랜드를 다시 떠올리기를 원하는가?’ 캠핑용품 브랜드라면 제품을 늘어놓는 대신 텐트 안에서 따뜻한 음료를 마시는 장면을 경험하게 할 수 있다. 조명 브랜드라면 수십 개의 조명을 벽에 진열하기보다 하루를 마치고 거실에서 책을 펼치는 순간을 만들 수 있다. 제품과 기술은 그 장면 속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면 된다.
이제 브랜드의 경쟁은 몇 평의 물리적 공간을 차지하느냐가 아니라, 참관객의 삶에서 어떤 장면을 차지하느냐의 경쟁이다. 따라서 ‘어떻게 우리 제품을 더 많이 보여 줄까’보다 ‘어떤 장면에서 우리를 떠올리게 할까’를 먼저 물어야 한다. 제품과 로고는 눈앞에서 사라지지만, 잘 설계된 장면은 이후의 일상에서 다시 브랜드를 불러낸다. 강한 브랜드는 가장 많이 보이는 브랜드가 아니다. 가장 필요한 순간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다.
VOL.133(202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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