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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전시 공간의 진화

고대 사원에서 현대의 디지털 트윈 기술까지


글·사진┃이형주 대표

VM Consulting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인류는 우리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수많은 공간을 만들어 왔다. 이 공간들은 단순한 물리적 구조물이 아닌,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하나의 캔버스였다. 특히 전시 공간의 진화는 단순히 건축 양식을 변화시킨 것만이 아니다. 인류가 세계를 이해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을 반영한 큰 서사시다. 고대의 신성한 사원에서 현대의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기술에 이르기까지, 전시 공간은 우리의 의식과 사고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지금부터 그 발자취를 하나씩 따라가 보자.

이집트 피라미드 / 출처 Medium.com, 경주시청


고대 사원, 신과 조우하는 영적 공간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Pyramid)는 단순한 무덤이 아니다. 국왕 ‘파라오(Pharaoh)’의 권위와 신성함을 상징하는 거대한 전시물이다. 피라미드 내부의 복잡한 통로와 방들은 사후 세계로의 여정을 나타내며, 벽화와 조각은 신과 인간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고 있다. 또한 피라미드는 영원성을 상징하며 죽음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인류가 창조한 최초의 거대 전시 공간인 것이다.

그리스 아테네의 고대유적 파르테논(Parthenon) 신전은 또 다른 중요한 전시 공간이다. 아테네의 수호여신인 ‘아테나 (Athena)’에게 바쳐진 이 신전은 그리스 예술과 건축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리스인들은 신전의 기둥과 벽면에 신화와 역사, 철학을 새겨 넣어 그들의 문명을 후대에 전시했다. 파르테논 신전은 종교적 공간을 넘어 그리스 문화의 핵심을 담은 예술 작품이다.

이탈리아 로마의 판테온(Pantheon)은 신성한 공간의 또 다른 예다. 판테온은 모든 신들을 모시는 신전으로, 돔 천장에 뚫린 원형 구멍인 오큘러스를 통해 빛이 들어온다. 이 모습은 마치 신의 빛이 세상을 비추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사원들은 그 자체로 예술품이었으며 고대인들의 신앙과 문화를 전시하는 공간이었다.

마찬가지로 신라시대의 천마총(天馬塚)도 고대 전시 공간이다. 천마총은 신라시대의 왕릉으로 내부에서 말 그림인 ‘천마도’가 발견되어 그 이름이 붙여졌다. 이뿐만 아니라 화려한 금관, 다양한 무기와 장신구, 도자기 등이 함께 묻혀 있었다. 이는 당시 신라 왕족의 권위와 부를 상징한 유물들이다. 특히 천마도는 신라인의 정신세계를 상징한다. 하늘을 나는 듯한 말의 이미지는 천상 세계와 연결된 신성한 공간임을 나타낸다. 천마총은 신라시대의 예술과 문화, 종교적 믿음을 후대에 전시하게 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신라시대 천마총 내부 / 출처 Medium.com, 경주시청


궁전, 권력 중심이자 문화와 예술의 공간

시간이 흘러 고대 사원은 궁전으로 변모했다. 궁전은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닌 권력과 예술의 융합을 보여주었다. 특히 파리 루브르 박물관(Louvre Museum)은 원래 프랑스 왕들의 궁전이었다. 12세기에 요새로 지어진 루브르는 이후 여러 왕에 의해 확장되어 궁전으로 사용되었다. 프랑스 혁명 후 루브르는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일반 대중들에게 공개됐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박물관 중 하나로 모나리자, 비너스 등 수많은 예술품과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중국 베이징의 자금성(紫禁城)도 같은 경우다. 자금성은 15세기 명청시대의 황제가 거주하던 궁전으로 중국의 문화와 예술, 권력의 중심지였다. 황제의 권위와 중국의 전통을 보여주는 수많은 건축물과 예술품들이 자금성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자금성은 단순 거주지가 아닌 그 시대의 권력과 문화를 전시하는 공간이었으며 지금도 중국의 현대사를 상징하는 건축물로서 그 위상을 드넓히고 있다.

또한 17세기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Palace of Versailles)은 그 시대의 화려함과 권력의 극치를 보여준다. 당시 프랑스의 왕인 ‘루이 14세(Louis XIV)’는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베르사유를 건설했다. 베르사유 내부는 웅장한 건축물, 호화로운 정원, 그리고 수많은 예술품으로 가득 찼다. 이처럼 궁전은 권력의 상징이자 예술을 전시하는 공간으로서 그 역할을 한 것이다.


(왼)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내부 (오) 중국의 자금성 / 출처 클룩, Paris City Vision


전시컨벤션센터, 상업과 산업의 융합의 장

19세기 후반 영국을 중심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전시공간은 또 한 번의 변화를 맞이한다. 집에서 물레방아를 돌리며 옷을 만들던 가내 수공업은 기계의 발명으로 대량 생산이 시작돼 본격적인 제품 판매와 홍보 공간이 필요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런던 만국 박람회, 현재의 엑스포(Expo)다.

1851년 런던에서 개최된 첫 번째 국제 박람회로 크리스털 팰리스, 즉 수정궁이라는 거대한 유리 건축물에서 행사가 열렸다. 이곳에서 세계 각국은 자신들의 기술과 문화를 전시하며 산업혁명의 성과를 자랑했다. 이처럼 박람회는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소개하는 공간임과 동시에 세계 문화를 교류하기 위한 장이 되었다.

특히 박람회는 현대적 컨벤션센터의 기원을 제공하기도 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 세계 박람회와 상업적 전시회가 유럽과 북미에서 활발히 열리기 시작하면서 도시들은 대규모 회의, 전시회를 유치하기 위해 다목적 시설을 건설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경제적 번영을 맞이한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컨벤션센터 건설 붐이 일어났다. 대표적인 예로 1986년 개장한 미국 ‘뉴욕 자비츠 센터’가 있다.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프랑크푸르트 메쎄, 두바이 월드 트레이드 센터와 같은 주요 컨벤션센터들은 상업과 산업의 중심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듯 전시 공간의 발전은 전 세계의 산업과 문화가 상호작용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음을 보여준다.


미국 뉴욕 자비츠 컨벤션센터 외관 모습 / 출처 위키피디아


유니크 베뉴, 경험 경제 시대의 전시 공간

20세기 산업 경제를 넘어 21세기는 경험 경제 시대에 들어섰다.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형태를 넘어 소비자는 제품이 주는 특별한 경험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부응하기 위해 전시 공간 역시 단순한 관람을 넘어서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유니크 베뉴’로 진화하고 있다.

유니크 베뉴란 독창적이고 차별화된 환경에서 비즈니스 이벤트와 전시를 제공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유니크 베뉴의 큰 특징 중 하나는 그 장소의 역사성과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전시와 이벤트의 조합이다. 예를 들어 영국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National Portrait Gallery)는 빅토리아 시대를 반영한 화려한 건물에서 현대적인 전시와 행사를 결합하여 독특한 경험을 제공한다. 이 갤러리는 초상화를 전시하는 것을 넘어서 빅토리아 시대의 건축 양식과 그 당시 사회적 배경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같이 운영하고 있다. 방문객들은 그 시대 옷을 입고 당대의 생활 방식을 체험하거나 예술가들과의 가상 인터뷰를 통해 역사와 예술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또한 유니크 베뉴는 그 장소의 자연환경과 결합해 특별한 체험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자연 온천을 배경으로 한 아이슬란의 ‘블루 라군’은 특별한 전시와 이벤트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블루 라군은 치유 효과가 있는 천연 온천과 독특한 자연경관을 활용하여 방문객들에게 이색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예로 온천욕과 함께 진행되는 아트 워크숍이나, 자연 속에서 즐기는 야외 영화 상영 등의 프로그램은 방문객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준다.

유니크 베뉴의 또 다른 매력은 그 공간에서 제공하는 특별한 자원을 활용하여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몽생미셸 수도원’은 중세 시대의 건축물과 역사적 유산을 바탕으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방문객들은 가이드 투어를 통해 수도원의 역사와 문화를 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도사들이 이용했던 명상과 기도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다. 이 같은 체험은 방문객들이 그 장소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개인적인 경험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처럼 유니크 베뉴는 경험 경제 시대에 맞춰 전시 공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방문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즉 경험을 통해 감동을 전하는 신선한 형태의 전시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공간들은 그 장소의 고유한 역사성과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여 방문객들에게 가치 있는 경험을 제공하며, 지속 가능한 문화와 관광의 미래를 제시하고 있다.


영국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 내부 모습 / 출처 Washingtonian.com


디지털 트윈, 현실을 복제한 가상공간 속으로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은 물리적 공간을 가상화하여 디지털 세계에서 복제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전시 공간에도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디지털 트윈을 통해 전시 공간은 언제 어디서든 접속 가능한 가상 현실로 확장된다. 디지털 트윈은 개념적으로 가상 현실(Virtual Reality)과 다르다. 디지털 트윈이 현실 세계를 복제하는 것이라면 가상 현실은 현실을 넘어 상상의 공간을 구현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오프라인 전시 공간을 그대로 디지털화해 온라인에서도 같은 전시를 관람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디지털 트윈기술이다. 한 예로, 디지털 트윈 기술을 이용해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모든 전시물을 온라인으로 탐험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하게 이미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전시 공간을 가상 현실로 경험하는 것이다. 관람객은 가상 현실 헤드셋을 통해 박물관을 둘러보며 작품과 상호작용하고 심지어 큐레이터와 대화도 나눌 수 있다. 이와 같은 기술은 전시 공간의 접근성을 혁신적으로 향상시켰다. 물리적으로 박물관을 방문할 수 없는 사람들도 디지털 트윈을 통해 전시를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기술은 교육과 문화를 보급하는 데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되고 있다.

 

전시 공간의 진화는 공간의 변화를 넘어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다. 고대 사원에서 컨벤션센터, 현대 박물관에 이르기까지 전시 공간은 항상 그 시대의 산업과 문화를 담고 있었다. 더구나 디지털 트윈과 같은 혁신적인 기술은 전시 공간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한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되고 있다.

앞으로도 전시 공간은 계속 진화할 것이며 우리는 그 속에서 인류의 발자취를 발견할 것이다. 전시 공간은 우리의 과거를 보존하고 현재를 기록하며 미래를 열어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거대한 전시 공간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


디지털 트윈 기술을 활용한 루브르 온라인 박물관 / 출처 louvre.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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