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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전시회 탄소 배출, 어떻게 줄일 것인가

  • 작성자 사진: 준걸 김
    준걸 김
  • 7월 10일
  • 5분 분량

최종 수정일: 7월 14일

AUMA, 독일 맞춤형 ‘전시회 탄소 배출 산정 가이드라인’ 발표

측정부터 계산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알려 주는 기준과 해법 제시


세계 전시산업이 지속 가능성을 핵심 가치로 삼고 본격 적인 실천에 나선 가운데, 독일전시산업협회(AUMA)는 지난 2025년 2월, ‘전시회 탄소 배출 산정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글로벌 탄소중립 전시 이니셔티브(Net Zero Carbon Events, 이하 NZCE)의 측정 기준을 독일 산업 환경에 맞게 보완한 맞춤형 지침이다.

   글 | 이수빈 한국전시산업진흥회 기반구축팀 대리

©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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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독일전시산업협회(AUMA)
출처 독일전시산업협회(AUMA)






지속 가능성, 전시산업의 생존 전략

AUMA 가이드라인은 박람회 및 이벤트 산업의 온실가스(Greenhouse Gas) 배출 산정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전시회 단위(Event Level)로 탄소 배출량을 명확히 정의했다. 이를 위해 제품 수명주기 관점(Life Cycle Thinking)의 산정 기준을 적용했다. 즉, 전시회 전(준비 기간), 중(운영 기간), 후(철수 및 폐기 기간)에 이르는 전체 생애주기 동안 발생하는 모든 배출원을 포괄하며 ‘행사를 하나의 제품(Product)’으로 간주해 제품 수명주기 관점에서 탄소 배출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 결과, 기존의 조직(기업) 단위 산정 방식과는 달리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복잡한 프로세스가 얽혀 있는 전시회 운영 현실을 보다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게 됐다. 즉, 단순히 운영상 발생하는 직접 탄소 배출을 넘어 공급망 전반에 걸친 간접 배출까지 통합적으로 고려한다는 점에서 기존 방식과 차별화된다. 또한 표준화된 측정 프레임워크를 제공함으로써 주요 이해관계자(주최사, 전시장 운영자, 참가기업, 서비스업체 등) 간의 정보 비교와 투명성 확보 역시 가능해졌다. 이를 통해 산업 전반의 신뢰성 강화는 물론, ESG 규제에 대한 대응력 향상 효과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아울러 탄소 배출량 계산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는 실용적인 지침 제공을 통해 전시산업 내 이해관계자들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인식 제고와 실천 동기 부여 역시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독일이 세계 주요 산업전시회의 약 3분의 2를 개최하는 글로벌 허브라는 점에서 이번 가이드라인이 가지는 전략적 의미는 더욱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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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이고 친절한 산출 기준과 원칙 수립

가이드라인은 전시회 단위로 탄소 배출을 관리할 수 있도록 주요 배출원을 10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했다. 이에 해당하는 항목은 △생산 및 자재(부스 구조물, 마케팅 물품 등) △물류 및 운송(장치 운송, 물품 배송) △식음료 △장거리 이동 △현지 교통편 △숙박 시설 △에너지 △수도 사용 △폐기물 △디지털 콘텐츠 및 커뮤니케이션이다. AUMA는 이 10가지 배출원 범주를 모두 정량화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제 막 탄소 배출 관리를 시작한 전시회와 기존 관행에 따라 데이터를 측정·수집해 온 전시회 간의 운영 여건과 숙련도 차이로 인한 속도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이번 가이드라인은 데이터 수집과 산정 방법을 총 세 가지 단계(Basic-Intermediate-Advanced)로 제시했다. 기본 단계에서는 업계 평균값이나 대리 데이터(Proxy Data)를 활용해 대략적인 산정을 수행하고, 중급 단계는 주요 배출원에 대해 직접 수집한 데이터를 활용한다. 마지막 고급 단계에서는 공급망 전반의 데이터를 통합 관리해 보다 정밀한 산정을 수행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전시회별 상황에 맞춘 유연한 대응을 가능하게 하며, 결과적으로 지속 가능한 관리 체계가 단계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돕는다.

데이터베이스 활용 기준도 명확히 제시되었다. 먼저, 독일 환경청(Probas)의 데이터베이스를 최우선으로 사용하며, 부족할 경우에는 영국 DESNZ(에너지 보안 및 탄소중립부), 프랑스 ADEME(환경 에너지 관리청) 등 공신력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차순으로 활용한다. 그리고 탄소계수(Emission Factors)를 적용할 경우에는 반드시 최신 데이터를 사용하며 만약 수치를 가정(Assumptions)하거나 대리 데이터를 사용할 경우에는 그 내용을 명확히 문서화해 명시해야 한다는 점도 밝혔다. 이 외에도 모든 산정 근거를 문서화하고 공개하는 등 투명성 원칙이 중요하게 강조됐다. 또한 배분(Apportionment) 방식도 체계적으로 정의됐다. 예를 들어 한 전시장에서 여러 전시회가 동시에 개최되는 경우에 에너지, 수도, 폐기물 등 자원 사용량은 전시회 별로 면적, 기간, 참가자 수 등의 기준에 따라 합리적으로 배분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해관계자별 역할도 확인할 수 있었다. 내용인즉 주최사는 주도적으로 행사 전체 탄소 배출량을 측정·공개하고, 전시장 운영자는 시설 사용으로 발생한 에너지와 수도 데이터를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장치업체와 서비스업체는 자재 사용 및 운송 관련 데이터를 제공해야 하며, 참가기업 역시 부스 설계와 운영 단계에서 탄소 감축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독일형 가이드라인의 특수성과 의의

AUMA 가이드라인은 글로벌 기준인 NZCE 대비 몇 가지 뚜렷한 차별점을 보인다. NZCE에서는 ‘비중요 항목’으로 분류해 제외했던 수돗물 사용량을 AUMA는 독립적인 배출원 항목으로 포함시켰다. 또한 독일은 주최자가 식음료 판매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경우가 많은 점을 반영해, 행사장 내 푸드 트럭과 카페에서 발생하는 식음료 소비분도 배출량 계산에 넣었다.

디지털 활동의 경우에는 대규모 이메일 발송, 웹사이트 방문, 스트리밍 등으로 측정 대상을 엄격히 제한했다. 또한 면적과 기간을 모두 고려한 에너지·수도 사용량 배분 방식은, 기존 NZCE의 단순한 기준에 비해 한층 정밀하게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이는 독일 전시산업의 실제 운영 환경에 맞춰 보다 정교하고 실행력 있는 탄소 배출 산정 체계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국가별 산업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한편, 이번 가이드라인 역시 보완이 필요한 항목들이 존재한다. 다회 사용 자재(카펫, 가구 등)에 대한 배출량 산정 기준이 추가로 마련돼야 하며, 행사장 건물의 내재 탄소(Embodied Carbon) 반영 여부도 향후 결정이 필요한 사안이다. 아울러 디지털 활동에서 발생하는 배출량 계산 방식의 고도화, 탄소계수 및 대리 데이터(Proxy Data)의 표준화 작업도 지속 추진돼야 한다. 이에 대한 업계의 추가 논의와 충분한 협의 필요성을 강조한 점에서, AUMA 가이드라인은 ‘완성형’이 아니라 ‘진화형’ 모델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 AU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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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IMEX FRANKFURT는 매년 탄소 배출 절감 리포트를 공개한다. © IMEX FRANKFURT
독일의 IMEX FRANKFURT는 매년 탄소 배출 절감 리포트를 공개한다. © IMEX FRANKFURT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AUMA의 전시회 탄소 배출 산정 가이드라인은 국내 전시업계에도 중요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특히 ‘전시회 단위(Event Level)’ 산정 기준과 ‘제품 수명주기 관점’의 적용은, 전시 운영 전반의 탄소 흐름을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이는 아직 전시 단위의 탄소 배출 산정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도입되지 않은 우리 업계에 실질적인 벤치마킹 모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도입하기 위해서 국내 전시업계는 몇 가지 과제를 선결해야 한다.

그중 하나로 데이터 수집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현재 대부분의 국내 전시장은 행사별 에너지, 수도, 폐기물 데이터를 별도로 분리 관리하지 않고 있어, 정확한 탄소 배출 산정이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향후 신축 혹은 증축되는 전시장에서는 설계 단계부터 데이터 분리 수집이 가능한 설비를 갖춰야 하며, 기존 베뉴들은 구역별 데이터 수집 체계를 점진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한 참가자 등록 시스템도 개선돼야 한다. 참가자의 교통 이동은 전시회 탄소 배출의 주요 요인 중 하나다. 등록 시 이동 교통수단, 출발지, 숙박 정보 등 상세한 정보를 수집하고 대중교통 이용을 유도하는 캠페인을 병행한다면 보다 정밀한 배출량 예측과 감축 전략 수립이 가능해질 수 있다. 나아가 장치 업체와 서비스업체를 대상으로 한 탄소 정보 제출 체계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전시회 유형별 맞춤 전략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기계·자동차·반도체와 같은 대형 산업 전시회는 물류 부문에 탄소 배출이 집중될 가능성이 높은 반면, 뷰티·식품·패션 등 소비재 전시회는 관람객 이동 및 폐기물 관리가 핵심 관리 항목이 될 것이다. 따라서 각 전시회 특성에 따른 감축 전략을 세워야 한다.

국제표준과의 연계성도 고려해야 한다. ISO 20121(지속 가능 이벤트 관리 시스템), ISO 14067(탄소발자국 산정) 등과의 정합성을 고려한 국내형 가이드라인을 개발하고 향후 글로벌 인증을 받을 수 있는 체계적인 기반을 마련한다면, 해외 참가기업과의 신뢰도 제고에도 기여할 수 있다.


탄소 배출을 줄이는 다섯 가지 열쇠

프랑크푸르트 메세(Messe Frankfurt)와 같은 글로벌 전시기업들은 이미 자체 산정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국내 일부 전시장에서도 ESG 경영 활동이 시작됐으나, 아직 행사 단위 온실가스 인벤토리 구축에는 이르지 못한 실정이다. 향후에는 국내 전시산업 차원의 공동 대응 플랫폼 구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행사별 탄소 배출량을 표준화된 방식으로 수집하고 비교할 수 있는 통합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산업 평균치를 제시하고, 모범사례를 확산시키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지속 가능 전시회 인증제’ 도입 등 탄소 감축 성과가 우수한 전시회에 대해 인증마크를 부여하고, 이를 정부나 지자체 차원의 지원 인센티브와 연계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AUMA 가이드라인은 단순한 산정 매뉴얼이 아니라 전시산업의 미래 경쟁력을 키우는 전략 중 하나다. 탄소 배출을 줄이는 전시회가 참가기업, 바이어, 관람객으로부터 선택받는 시대가 도래한 지금, 국내 전시산업도 행동해야 한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감축을 계획하고, 투명하게 공개하고, 함께 협력하고, 혁신을 추진하는 것. 미래를 여는 이 다섯 개의 열쇠를 지금부터 쥐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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