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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산책] 공감은 지능이다: AI 시대, 결핍이 만들어 낸 새로운 능력

  • 작성자 사진: 준걸 김
    준걸 김
  • 1월 12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6일 전


차가운 효율의 시대에 ‘공감’이라는 희소자원

AI가 대신할 수 없는 직업의 핵심, 바로 사람다움



AI가 인간의 업무와 판단을 빠르게 대체하는 시대다. 효율과 편의는 커졌지만 공감과 관계 같은 인간적 능력은 오히려 희소해졌다. 기술과 데이터가 채우지 못하는 감정의 결핍이 새로운 과제가 되고 있다. AI가 커질수록 왜 인간다움이 더 중요해지는지 그리고 왜 사람 중심의 가치로 전환해야 하는지를 살펴본다.


글 | 김희연 『공감지능 시대』 저자



AI가 발전할수록 인간의 공감 능력은 경쟁력이 되고 있다. © SHUTTERSTOCK



편리함의 역설, 데이터는 얻고 마음은 잃다

얼마 전 심한 장염을 앓았다.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었고, 사흘 만에 체중이 2kg이나 빠지자 혹시 다른 병은 아닐지 불안이 밀려왔다. 다시 찾은 병원에서 돌아온 말은 간단했다. “장염은 굶으면 낫는다니까요.” 의사는 환자를 보지 않은 채 모니터 속 차트만 훑어보았다. 증상의 고통이나 불안에 대한 설명은 반복되는 처방 앞에서 의미를 잃었다.

이는 비단 병원만의 풍경은 아니다. 효율과 비용 절감이라는 서늘한 경제 논리가 세상 전반을 덮고 있다. 식당에 들어서면 “어서 오세요”라는 인사 대신 키오스크의 차가운 터치 화면이,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면 상담원의 목소리 대신 챗봇의 정해진 답변이 우리를 맞이한다. 세상은 더 빠르고 편리해졌지만, 연결은 과잉이고 관계는 빈곤하다. 바야흐로 ‘공감의 결핍’ 시대다.

경제학에는 ‘희소한 것은 가치가 오른다’는 불변의 원칙이 있다. 지금 이 원칙이 가장 극명하게 적용되는 대상은 다름 아닌 ‘사람의 마음’이다. 손에 쥔 스마트폰은 우리의 검색 기록을 분석해 욕망을 읽어 내고, 지금 당장 사야 할 것과 봐야 할 것을 정확히 추천한다. 알고리즘은 지갑을 열게하는 마음에는 능숙하지만, 마음 깊은 곳의 허기나 이유 모를 불안을 위로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우리는 데이터의 숲을 헤매느라 정작 사람과 부딪치는 시간을 잃어버렸다. ‘편리함’이라는 나침반을 따라 부지런히 달려왔지만, 도착하고 보니 정말 소중한 무언가를 흘리고 온 듯한 기분이 든다. 좋은 변화라 믿었던 효율화가 실은 삶의 온기를 조금씩 앗아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사람의 온도’가 느껴지는 곳을 만나면 유독 반가워진다. 평소 자주 찾는 아이스크림 가게, ‘녹기전에’가 그런 곳이다. 인생의 좋은 시절이 녹아 사라지기 전에 즐기라는 다정한 의미를 담은 이곳은 늘 문전성시를 이룬다. 단순히 아이스크림이 맛있어서가 아니다. 이곳 사장님은 가게의 가장 중요한 인테리어는 바로 ‘사람’이라고 말한다. 화려한 장식 대신 사람 인(人) 자를 써서 ‘人테리어’를 추구한다. 소박한 매장에 들어서면 마주하는 따뜻한 환대가 이곳의 진짜 상품이다.

이 작은 가게의 성공은 새로운 경제 법칙을 시사한다. 비용 절감을 위해 세상 모든 매장이 키오스크로 채워질수록, 역설적이게도 사람이 직접 눈을 맞추며 주문을 받고 정성을 건네는 공간은 이제 ‘프리미엄’이 된다. 모두가 기계적인 효율을 좇을 때, 사람만이 건넬 수 있는 투박하지만 따뜻한 ‘접촉’과 ‘공감’이 가장 비싼 가치를 만들어 낸다.



공감, AI 시대에 더 빛나는 직업의 조건

강의를 할 때면 “AI 시대에 어떤 직업이 살아남을까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럴 때마다 직업의 ‘이름’이 아니라, 그 일을 대하는 ‘태도’를 보라고 답한다. 그렇다면 그 태도란 무엇일까. 직업을 기능적인 ‘명사’가 아니라, 인문적인 ‘동사’로 바라보면 이해가 쉬워진다. 최근 우연히 들른 치킨집에서 사장님과 요양보호사 손님이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되었다.

TV에서 튀김 로봇 뉴스가 나오자 사장님은 “로봇이 튀기면 이 집 저 집 맛이 다 똑같아질 텐데, 그럼 우리 가게는 뭘로 경쟁하지?”라며 걱정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그래, 키오스크를 없애고 손님이 들어올 때 먼저 웃으며 인사하고, 기분 좋은 한마디를 건네는 사람이 돼야겠어”라고 자답했다. 그 이야기를 듣던 요양보호사 손님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로봇이 아무리 발전해도 노인의 외로움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까지 어루만질 수는 없겠죠. 저도 단순히 몸만 돌보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을 다독이는 진짜 보호자가 되어야겠어요.” 이 두 사람의 대화가 바로 답이다. 자신을 ‘치킨을 튀기는 사람(명사/기능)’으로 정의하면 로봇에 의해 대체되지만, ‘음식으로 위로를 건네는 사람(동사/의미)’으로 정의하면 대체 불가능해진다.

다시 병원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내과에서 상처받은 후 지인의 추천을 받아 제법 먼 거리의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모니터 대신 내 몸 전체를 오랜 시간 촉진하면서 말했다. “환자분, 장이 많이 예민해지셨네요? 평소에도 장 때문에 고생하셨겠어요.” 그의 설명을 듣는 순간, 그동안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받는 것 같아 눈물이 핑 돌았고, 신기하게도 의사를 만나고 온 뒤부터 통증이 점차 사라졌다. 물론 나을 때가 되어 나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안을 감싸 안고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공감을 이끌어 낸 그 ‘사람다운 의사’에게 깊은 신뢰가 생겼다. 머지않아 인공지능으로 몇 초 만에 처방을 받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런 시대일수록 환자들은 5분 거리의 병원보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자신의 고통과 불안을 진심으로 이해해 주는 병원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변화 속에서 안정적인 직업이란 무엇일까. 이제 ‘전문직’이나 ‘안정된 간판’ ‘대기업’이라는 이름만으로는 더 이상 영원한 안정이 보장되지 않는다. 기능적인 역할의 상당 부분을 AI가 대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더욱 중요해지는 것은 관계를 맺고 상황을 판단하며 창의적으로 사고하는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 공감이라는 인간 고유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일이다. 바로 그런 일을 하는 직업이 가장 안정적이고 좋은 직업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기술은 문제를 해결하지만, 사람은 마음을 어루만진다. 기술은 편리를 제공하지만, 사람은 ‘의미’를 만든다. AI가 커질수록 인간의 역할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 이제 공감은 성격이나 미덕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길러야 할 하나의 지능이다. 이 지능이 개인의 미래와 사회의 온도를 결정할 것이다. 새해에는 모두가 공감지능을 키우며, 좀 더 따뜻한 사회를 함께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는 대기업·전문직보다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이 가장 안정적인 직업이 되는 시대다. © SHUTTERSTOCK
이제는 대기업·전문직보다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이 가장 안정적인 직업이 되는 시대다. ©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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