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산책 2] 회사의 운명을 좌우하는 KPI, 그 유효성을 점검하라
- 준걸 김
- 1월 10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1월 13일
성과와 갈등 사이, KPI의 한계와 해결 방안
지금 시대를 대변하는 대표 키워드는 ‘성과주의’다. 기업뿐 아니라 정부와 단체들 역시 성과주의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영국의 다국적 그룹인 딜로이트 컨설팅은 “현 성과관리체계가 실질적 성과를 창출하고 있다고 인식하는 조직은 단 6%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3,000개 조직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기존의 ‘KPI(핵심성과지표)’ 중심 관리 방식이 실제 업무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 ‘불확실하고 복잡하고 모호하며 변화가 많은 세상(VUCA)’에서 30년 전에 탄생한 KPI 중심의 성과주의가 여전히 유효할까?
글┃정인호 대표
GGL리더십그룹, 『다시 쓰는 경영학』 저자

출처 shutterstock
KPI의 두 얼굴, 성과와 사각지대의 공존
미국의 인터넷 종합 쇼핑몰 거대 기업인 아마존은 2020년에 직원의 생산성을 추적하기 위해 ‘TOT(Time Off Task)’라는 KPI를 도입했다. TOT 지표는 직원이 일하지 않고 보내는 시간을 측정했으며, 지속적으로 높은 TOT 점수를 받은 직원은 해고의 대상이 되었다.
기업이 직원의 생산성을 추적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아마존의 TOT 지표는 휴식 시간, 화장실 이용 시간 등 직원의 업무 능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개인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TOT 지표에 해당하는 직원들은 비생산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을 피하려고 납득이 불가능한 속도로 일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아마존의 열악한 근무 환경은 직원 학대 논란으로 이어졌으며 사회적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KPI는 비즈니스 성과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지만 항상 비즈니스 성과의 전체 그림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KPI가 피상적인 수치 개선에만 근시안적으로 초점을 맞추게 되면 비즈니스 성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요소, 즉 DE&I, 고객 충성도, 브랜드 평판과 같은 비재무적 요소를 배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를 ‘터널시야(tunnel vision 현상)’이라고 한다. 어두운 터널을 빠른 속도로 달리면 터널의 출구만 동그랗게 밝게 보이고 주변은 온통 깜깜해지는 사각지대를 말한다. 예를 들어 기업에서 ‘매출 성장’이나 ‘고객 확보’와 관련된 KPI에 집중하다 보면 직원 참여, 형평성, 포용성, 소속감과 같은 요소는 고려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터널시야 현상은 회사의 고유한 상황과 차별화된 목표가 아닌 과거 데이터나 업계 벤치마크를 기반으로 KPI를 설정할 때도 생길 수 있다. 그로 인해 회사의 혁신 능력, 변화하는 시장 상황에 적응하는 능력, 장기 목표 달성 능력과 관련된 사각지대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회사의 전반적인 성과에 대한 이해에 사각지대를 발생시켜 비즈니스 기회를 놓치거나 잠재적인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성과주의의 역설, KPI의 부작용을 재조명
KPI의 또 다른 한계로는 KPI가 비현실적이거나 달성 불가능한 수준으로 설정되었을 경우, 직원들의 의욕이 꺾이고 좌절감을 느끼게 만든다는 점이다. 또한 직원의 동의나 의견 없이 과거 성과 데이터, 업계 벤치마크, 외부 시장 상황을 기반으로 목표가 설정되었을 시 감정적 유대가 없어지고 시키는 대로 일하는 로봇과 같은 존재로 전락할 수 있다.
이러한 지점은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간과하는 문제를 낳게된다. 관계는 모든 비즈니스의 성공, 지속적 성공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조직의 강점은 회사 내부와 외부에서 사람들을 얼마나 잘 육성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KPI의 중요한 단점 중 하나는 이러한 관계의 상호작용이나 조직의 건강에 필수적인 기업문화의 강점을 측정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KPI 중심의 전통적 성과관리 방식은 오늘날 오히려 성과에 역행하는 툴이다.
미국 유통기업인 베스트 바이의 최고경영자였던 위베르 졸리(Hubert Joly)는 더 이상 기존의 성과평가 방식을 진행하지 않았다. 그는 “도대체 누가 당신에게 B, C 등급을 말할 수 있단 말 인가? 대체 어떤 상사가 당신의 성과를 정확히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과연 평과 대상이었던 이들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했다고 할 수 있을까? 순위 할당제는 기준이 높고 주관적인 판단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문제가 있다. 높은 순위에 오르기 위해 동료를 짓밟아야 하고, 늘 하위 10퍼센트는 존재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핵심 인재를 잃을 수도 있다.
룰 체인지의 힘, 갈등을 협력으로 이끄는 KPI
그럼에도 KPI를 꼭 활용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회사든 영업팀과 경영지원팀은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 영업팀은 상품가격을 낮춰서라도 많이 팔고 싶어 하고 경영지원팀은 제값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갈등이 생기게 된 배경에도 모순된 KPI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업팀의 KPI는 대부분 ‘매출증가율’이다. 반면 경영지원팀의 KPI는 ‘영업이익률’일 때가 많다. 매출증가율과 영업이익률이 서로 상충하다 보니 두 팀 모두 자신의 KPI를 달성하기 위해 조직 전체의 관점이 아닌 자기 관점에서 주장을 펼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상을 ‘구조적 충돌’이라고 한다. 갈등의 원인이 사람이 아닌 제도, 즉 KPI에 있다. 이 경우 KPI가 서로 충돌되지 않도록 ‘룰 체인지’를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바로 영업팀과 경영지원팀에게 공통의 KPI를 부여해 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매출증가율도 아니고 영업이익증가율도 아닌 ‘영업이익총액’이라는 KPI를 양 팀의 리더에게 70% 정도 공통으로 줘보자. 결국 양 팀의 리더는 회의실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대립이 아닌 협력을 모색하게 된다.
다른 사례를 살펴보자. 18세기 영국에서는 죄수들을 배에 태워 호주로 보내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한 배에 500명을 태웠지만, 항해 중 약 30%인 150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한 배에서는 단 한 명의 사망자만 나오는 기적적인 일이 일어났다. 이는 정부가 룰을 바꾼 덕분이었다. 선장에게 운임을 ‘죄수 몇 명을 실었는지’가 아니라 ‘호주에 몇 명이 살아서 도착했는지’에 따라 지급하도록 한 것이다. 이후 선장들은 죄수들의 건강에 신경을 쓰며 그들을 존엄하게 대했다. 룰 체인지를 통해 죄수들의 생존율이 크게 개선된 것처럼 올바른 KPI를 성립하기 위한 변화가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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