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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글로벌 기술 혁신의 장: CES, 트렌드 변화의 쇼케이스

  • 작성자 사진: 준걸 김
    준걸 김
  • 1월 13일
  • 5분 분량

AI, 에너지, 양자 기술 등 CES가 제시하는 기술의 미래

국내 전시산업의 과제, 명확한 주제와 비전을 정립해야






매년 1월, 전 세계 기술 업계의 이목이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집중된다. 바로 세계 최대 규모의 기술 박람회인 CES가 이곳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1967년 첫 박람회 이후 매년 개최된 CES는 원래 국제 전자제품 박람회(The Consumer Electronics Show)의 약자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자체적으로 고유명사가 되어 기술 혁신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행사로 자리 잡았다. CES는 단순히 전자제품을 선보이는 자리를 넘어 기술이 산업 지형을 변화시키는 혁신 트렌드를 제시하는 미래 지도의 역할을 하고 있다. 기술 업계가 CES를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글┃권순우

더밀크 서던플래닛장


CES 2024 전경. 혁신상 수상작 전시장에 방문객들이 몰려 있다. 사진 CTA


매년 1월, 기술 업계가 라스베이거스로 향하는 이유

지난 1월 7일부터 10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5는 ‘다이브 인(Dive In)’을 주제로 개최됐다. 이번 행사에는 전 세계 4,500여 개 업체가 참가해 인공지능(AI), 디지털 헬스(Digital Health), 첨단 모빌리티(Advanced Mobility),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 혁신과 이를 활용한 미래 비전을 선보였다.

주최 측인 미국소비자기술협회(Consumer Technology Association), CTA는 ‘연결하고, 해결하고, 발견하라(Connect. Solve. Discover)’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기술과 기술, 사람과 기술, 나아가 사람과 정보 및 제품을 연결하고 기술로 전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자’는 메시지를 CES 전시와 콘퍼런스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담았다. 이는 CES가 단순히 기술을 소개하거나 나열하는 박람회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이 같은 이유로 삼성과 LG 같은 국내 기업은 물론 구글과 엔비디아 같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 그리고 수많은 스타트업들까지 CES를 새로운 비전, 기술, 아이디어를 공개하는 중요한 무대로 삼고 있다. CES를 통해 신기술 트렌드를 배우고 자사 기술을 점검하며, 새로운 비즈니스 아이디어와 기회를 모색할 수 있다는 점이 비싼 참가 비용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라스베이거스로 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혁신상 AI 부문 출품, 전년대비 49.5% 급증

CES는 ‘트렌드 변화의 쇼케이스’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단서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선 CTA가 매년 CES를 앞두고 발표하는 혁신상(Innovation Awards) 수상작에서 힌트를 발견할 수 있다. CTA가 지난 11월 발표한 혁신상 수상작의 주요 키워드는 인공지능, 헬스케어, 그리고 에너지로 해당 분야의 수상 제품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는 즉 2025년은 인공지능과 헬스케어 그리고 에너지에서 파생된 신기술이 등장하고 관련 산업 트렌드가 주목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2024년 기술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은 역시나 AI였다. CTA는 생성AI가 등장한 지난 CES 2024년부터 혁신상 부문에 AI를 추가했다. AI는 소프트웨어나 반도체는 물론 가전, 제조, 자동차 등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CES 2025 혁신상 AI부문의 출품은 전년대비 49.5% 급증했다. 산업의 변화가 CES 트렌드에 그대로 반영됐다는 의미다.

디지털 헬스 부문에서는 1차 발표에서만 43개의 혁신상 수상작이 나왔다. 이는 미국에서 GLP-1 기반의 비만치료제가 주목을 끌고 있는 트렌드와 맞닿아 있다. 업계에서는 GLP-1이 질병을 고치는 신약 수준을 넣어서 라이프스타일을 바꿀 정도의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CTA 역시 건강 관리가 인류의 가장 큰 관심사로, 기술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그래야 한다는 입장이다. CES 기간 중 이틀 동안 ‘디지털 헬스 서밋’을 별도로 개최하는 등 트랙을 만든 것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기조연설에서도 CES의 ‘트렌드 세터’ 본능은 그대로 반영됐다. CES의 기조연설은 그 해 기술 트렌드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시대상을 잘 반영한 기조연설자를 무대에 올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 56년 역사를 지닌 CES는 매년 기조연설로 주목받았다. 코로나19가 강타했던 지난 CES 2022에서는 CES 최초로 헬스케어 기업인 애보트(Abbott의 CEO)가 기조연설 무대에 섰다. CES의 모든 참가자들에게는 애보트의 코로나 검진 키트가 제공되기도 했다.

CES 2023에서도 파격은 이어졌다. 그 주인공은 농기계 업체 ‘존 디어(John Deere)’였다. 농기계 업체가 기조연설에 선 것은 최초였다. 기후변화에 따른 위기와 불안한 세계정세로 인해 식량 공급이 국가의 안보를 좌우할 리스크 요인으로 등장하자 자율주행 트랙터 기술을 내세운 존 디어의 기술이 하나의 솔루션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CES 2025 기조연설의 주인공은 젠슨 황(Jensen Huang) 엔비디아(NVIDIA) 창업자 겸 CEO였다. 생성 AI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으로 올라선 엔비디아를 통해 AI의 미래와 기술씬의 변화를 살펴보고자 했다.

 

CES 2025 기조연설자로 무대에 선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출처 shutterstock

 

글로벌 난제,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답으로 제시

CES는 매해 새로운 테마를 제시하고 관련 콘퍼런스와 전시 등을 마련한다. 새 테마는 인류를 위협하는 새로운 고민에 대한 대답이다. CES 2024의 슬로건은 ‘All Together, All On’. 인류가 직면한 난제를 모두 함께 기술로 해결하자는 의미가 담겼다.

앞선 CES 2023에서는 ‘모두를 위한 휴먼 시큐리티(Human Security for All, HS4A)’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인류 안보, 인간 안보’라는 이 슬로건은 1994년 UN이 최초로 도입한 ‘휴먼 시큐리티’ 개념을 딴 것이다. 식량, 의료, 경제, 환경, 개인, 공동체, 정치적 자유 등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7가지 분야의 심각한 위협으로부터 인류를 안전하게 보호하자는 의미였다. CTA는 일부 특권층만 아니라 인류 모두를 위한 기술 혁신을 통해 휴먼 시큐리티를 이뤄내자는 큰 비전을 지난 2년 간의 CES 전시를 통해 구현해냈다.

CES 2025에서 새롭게 꺼내든 화두는 ‘에너지 전환’과 ‘양자 기술’이었다. 생성AI 등장과 함께 항구적 에너지 부족 사태가 전 세계를 강타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빅테크 기업들은 원자력, 태양광 등 부족한 에너지원을 직접 개발하며 이에 대응하고 있다.

게리 샤피로(Gary Shapiro) CTA CEO는 “CES 2025에서는 다양한 에너지 솔루션을 탐구하는 핵심 에너지 전환 프로그램 트랙을 마련했다”며 “새로운 기술 등장과 함께 전 지구적으로 에너지 부족 사태가 잇따르고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유키 쿠스미(Yuki Kusumi) 파나소닉 CEO가 기조연설에서 지속 가능한 에너지 솔루션과 순환 경제에 대한 비전을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CTA가 CES 2025에서 주목한 또 하나의 기술은 양자(Quantum) 기술이다. 기술 업계에서는 이 기술을 활용한 컴퓨팅이 환경, 농업, 건강, 에너지, 기후 등 지구상의 불가능한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때마침 지난 12월 구글이 10자년* 걸리는 문제를 5분 만에 푸는 양자컴퓨터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CES 2025에서는 최초로 퀀텀 세션을 선보였고 관련 기술의 빠른 발전상을 제시했다. 샤피로 CTA CEO는 이와 관련, “양자 기술은 곧 비즈니스를 의미한다(Quantum Means Business)”고 강조하기도 했다.

* 10자년: 10의 25제곰으로 1조의 10조배 달하는 수

 

다양성과 포용성, 그리고 지역 상생 프로젝트

CES는 다양성과 포용성을 고려하는 데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CTA에 따르면 공식 프로그램 패널에는 다양한 성별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연사가 세 명 이상일 경우 최소한 한 명의 여성 연사가 포함되어야 한다. 실제로 CES 기조연설이나 패널 토론 등을 보다 보면 여성 연사들이 많이 참여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글로벌’을 지향하는 한국의 여러 전시 이벤트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풍경과 대조된다.

CES에서는 기술의 글로벌 적용과 소비를 다각도로 이해하기 위해 문화적 다양성 측면에서도 다양한 국가와 인종, 배경을 가진 연사를 초대하는 분위기가 점점 강조되고 있다. 단순히 외국인 연사를 초대해 프로그램 구성의 다양성을 채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들이 해당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할 수 있도록 운영되고 있다.

CES는 지역 기반의 인프라와의 연계도 강조한다. 라스베이거스라는 특수성이 있기는 하지만 공연장이나 대회장소 등을 적극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지역 경제발전은 물론, 지역색을 홍보할 기회로 삼는다. CES 2022에서 열린 ‘자율주행 챌린지(@CESAutonomous Challenge @CES)’가 대표적인 사례다. 라스베이거스 모터 스피드웨이에서 열린 이 대회는 완전 자율주행 차량의 상용화와 운전자 지원 시스템(ADAS) 기술 개발을 목적으로, 자율주행차의 최고 속도를 겨루는 레이싱 대회였다. 기술 시연과 볼거리, 그리고 주변 인프라를 잘 활용한 예라고 할 수 있다.

 

1 CES 2024 C스페이스 기조연설. 다양한 여성 전문가들을 패널로 무대에 세웠다. 출처 CES

2 CES 2022에 자율주행 챌린지에 참가한 카이스트 전기, 전자공학과 학생들. 출처 심현철 교수 연구팀 웹사이트

 

CES의 진화와 한국 전시산업의 도약 과제

한국 전시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단순히 외형적인 성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주제(Theme)와 비전을 정립한 전시가 필요하다. CES가 AI, 에너지, 헬스케어 등 시대를 선도하는 테마를 중심으로 기술 혁신과 사회적 가치를 연결하며 전시의 방향성을 명확히 제시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접근은 참가자와 관람객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전시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핵심 요소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지자체별로 CES를 표방한 다양한 전시 이벤트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혁신상을 마련하거나 콘퍼런스를 구성하는 등 CES와 유사한 형태를 구현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막상 전시회장을 찾아가 보면 어딘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적지 않다. 외형은 갖췄으나 그 안에 담긴 비전, 철학, 그리고 명확한 메시지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조직의 부재에서 비롯된 문제일지도 모른다.

한국 전시산업이 지속 가능하고 일관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외부의 입김에 흔들리지 않는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조직의 구성이 필수적이다. CES를 주관하는 CTA(Consumer Technology Association)처럼, 장기적인 관점에서 전시를 기획하고 운영할 별도의 조직을 갖추고 이를 통해 명확한 로드맵과 전략 실행이 필요하다. 이런 조직은 글로벌 트렌드와 국내 산업의 요구를 반영해 테마를 설정하고 정교한 콘텐츠를 기획하며,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을 주도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전시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높이기 위해 남성 중심적이고 획일적인 세션 구성을 탈피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성별과 배경의 연사를 초청하는 한편, 글로벌 이슈를 중심으로 차별화된 콘텐츠를 제공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더불어 디지털 전시와 하이브리드 모델을 적극 도입해 접근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코로나19 이후 CES가 온·오프라인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모델을 도입하면서 더 많은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CES만이 답은 아니다. 하지만 CES의 축적된 경험을 벤치마킹하는 일은 한국 전시산업에 중요한 참고점이 될 수 있다. 세계가 바라보는 한국은 이미 훌륭한 인적 자원과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강점이 있다. 이런 자원과 정책적 기반이 시너지를 낸다면, 언젠가 CES나 MWC 같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전시회를 개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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