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 트렌드] 경제 불황 속 변화한 쇼핑 트렌드 ‘듀프 & 핑티’ 소비가 뜬다
- 준걸 김
- 2024년 11월 8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4년 11월 12일
가격과 성능 다잡은 ‘저렴이’ 카피제품 열풍
SNS 플랫폼을 매개로 가치 소비와 실용주의 확산 중
장기화된 전쟁과 기후변화로 인한 경제 불황이 전 세계적으로 심화되면서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이 크게 변하고 있다.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지며 가계 부담이 늘어나자, 소비자들은 가성비를 중시하는 경향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Z세대를 중심으로 ‘듀프(Dupe)’와 ‘핑티(平替)’ 같은 대체 제품을 선호하는 소비 트렌드가 확산 중이다. 이들은 품질을 유지하면서도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제품을 찾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의 배경과 구체적인 트렌드를 알아본다.

다이슨과 샤크의 헤어 드라이어 제품을 비교하는 뷰티 유튜버 영상 출처 유튜브 채널 Cynthia Dhimdis
명품 대신 듀프를 선택하는 Z세대
‘듀프(Dupe)’에 대해 들어본 적 있는가. 올해 미국 Z세대의 주요 소비 트렌드 중 하나가 바로 듀프다. 복제(複製)를 뜻하는 듀프는 ‘Duplication’의 줄임말로, 인기 있는 고가의 제품과 매우 유사하지만 훨씬 저렴한 가격의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 패턴을 의미한다. 듀프의 핵심 키워드는 ‘고렴이’, ‘저렴이’, ‘가성비’ 등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 콘텐츠에서 제품 비교 시 자주 등장한다. 이 트렌드는 주로 패션, 뷰티, 가전 등의 일상생활 전반의 다양한 제품군에서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영국의 유명 가전 기업 다이슨(Dyson Ltd)의 에어랩 스타일러를 들 수 있다. 이 제품은 이미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드라이어임에도 수십만 원대에 이르는 높은 가격은 소비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 반면, 미국 가전 회사 샤크닌자(Shark ninja Inc)의 헤어 스타일러는 다이슨의 절반 가격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능과 디자인 면에서 뒤처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으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합리적인 소비를 중시하는 Z세대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은 브랜드의 명성보다는 가격 대비, 가치를 더 중시하는 특성을 보인다.
이처럼 다양한 산업에서 듀프 브랜드가 빠르게 성장하자, 유명 브랜드들은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레깅스계의 샤넬’로 불리는 룰루레몬(Lululemon)은 미국 내 매출 감소의 주된 원인으로 듀프 소비 트렌드를 지목했다. 이에 따라 룰루레몬은 듀프 제품을 가져오면 자사의 정품 의류로 교환해주는 파격적인 이벤트를 진행했다. 이 전략은 소비자들에게 고품질의 오리지널 제품을 직접 경험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정품의 가치를 부각하려는 의도였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행사에 참여한 1,000명 중 절반 이상이 신규 고객이었으며, 이는 듀프 트렌드가 특히 젊은 소비층의 생활에 깊숙이 스며들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시장조사기관 모닝컨설트(Morning Consult)가 미국 성인 2,200명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Z세대의 약 49%가 복제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밀레니얼 세대에서도 이 비율은 44%에 달했다. MZ세대는 듀프 제품을 사용하는 것을 숨기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는 단순히 저렴한 가격에 ‘득템’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품질과 가성비를 챙기는 것이 힙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자리 잡으면서, 이들은 SNS에 듀프 구매 경험을 거리낌 없이 공유하고 있다.
핑티 열풍에 빠진 중국 소비자들
중국 역시 Z세대 사이에서 ‘핑티(平替)’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여기서 핑티는 핑자티다이(平價替代), 즉 ‘싼 가격으로 대체한다’는 뜻으로, 미국의 듀프처럼 명품과 비슷한 수준의 품질을 갖고 있으면서도 가격은 저렴한 제품을 일컫는 신조어다. 핑티는 유명 브랜드를 참고해 제작되었지만, 로고를 그대로 복제해 소비자를 혼동시키는 ‘짝퉁’과는 다르다. 특정 브랜드를 모방하지 않으면서도 비슷한 재료를 사용해 동일한 사용감이나 만족감을 제공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핑티가 급부상한 데에는 최근 중국의 경기 둔화와 고용 불안의 영향이 크다. 반면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다양한 제품을 비교하는 게 쉬워지면서 젊은 층의 소비관도 가성비와 실용성에 집중하게 되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명품에 대한 인식변화도 이유 중 하나다. 예컨대 일본 명품 화장품 브랜드 SK-II의 페이셜 트리트먼트 에센스는 약 30만 원이지만, 유사한 성분을 담은 중국 현지 브랜드 찬도의 핑티 에센스는 약 10만 원(569위안)으로 훨씬 저렴하다. 가격은 1/3 수준이지만 품질 만족도는 최상이다. 또한, 중국 패션 브랜드 ‘시크조크(Chicjuc)’는 명품 프라다에 공급되는 이탈리아산 원단을 사용해 헤링본 트위드 코트를 약 60만 원(3200위안)에 판매한다. 장기적인 불황 속에서 이러한 대안은 소비자들을 더 합리적인 선택을 하도록 자연스럽게 이끌고 있다.
이렇게 핑티 소비를 즐기는 Z세대들이 늘어나면서 중국에서 글로벌 명품 브랜드의 매출은 감소하는 반면, 현지 핑티 브랜드들의 매출은 증가하고 있다. 중국 소비자들 역시 핑티 소비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온라인에서는 핑티 아이템을 발굴하고 명품과 가장 흡사한 제품을 공유하는 게시물이 연일 쏟아진다. 또한 핑티 아이템의 품질과 가격을 홍보하는 라이브 쇼핑 영상이 잇따르며 이를 구매하려는 소비자들로 붐빈다. 이 같은 변화는 한때 명품의 저렴한 대체품을 팔며 모조품 논란에 휘말렸던 현지 업체들이 새로운 소비 트렌드 속에서 재평가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듀프나 핑티 같은 소비 트렌드는 이미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왜 그럴까. 세계 경제가 동일하게 위축되면서 가계 부담을 줄이려는 소비자들의 욕구가 똑같이 커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경기 불황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치 소비와 실용주의가 소비 트렌드로 떠오르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이는 어떤 브랜드에겐 기회가, 어떤 브랜드에게는 위기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소비자의 마음을 잡기위해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까. 지금이야말로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Z세대의 핑티 소비를 견인하는 중국의 온라인 쇼핑 앱들 출처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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