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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나우] 기획자가 주목해야 할 공간 전략, 공간은 어떻게 브랜드의 이야기가 되는가

  • 8시간 전
  • 3분 분량

철학·메시지·감각·장소를 연결하는 브랜드 기획

고객이 머물고 느끼고 기억할 경험을 설계해야



지난해에만 국내에서 3천 개가 넘는 팝업스토어가 문을 열었다. 이제 팝업은 신제품을 알리는 이벤트를 넘어 일상적인 마케팅 수단이 됐다. 하지만 많은 비용을 들이고도 포토존의 사진 몇 장만 남긴 채 사라지는 공간도 적지 않다. 성공을 가르는 것은 공간의 크기나 화려함이 아니다. 방문객에게 어떤 경험을 주고, 그 경험으로 브랜드를 어떻게 기억하게 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공간 기획에 필요한 다섯 가지 성공 원칙을 살펴보자.


글 | 김지헌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브랜드 심리학자



본 세카이호텔 다카오카 지점은 지역의 고유한 가치를 ‘31가지 파란색’이라는 공간 컬러 콘셉트로 재해석했다



기억에 오래 남는 공간 기획을 하려면

첫째, 공간은 제품을 팔기보다 브랜드의 철학과 가치를 경험할 수 있게 설계되어야 한다. 좋은 공간은 브랜드의 집에 가깝다. 친구의 집에 초대받으면 그가 어떤 음악을 듣고, 무엇을 좋아하며,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브랜드의 공간도 마찬가지다. 판매 의도가 보이면 방문객은 자신이 환대받는 손님이 아니라 구매 대상으로 취급받는다고 느낀다. 구매는 공간 체험에 만족한 고객이 기념품을 사는 행위로 봐야 한다. 제품이 아니라 콘텐츠를 팔아야 한다.

필자는 중국 상하이에 위치한 루이비통의 팝업 공간인 ‘더 루이(The Louis)’를 방문한 적이 있다. 크루즈선을 닮은 건물은 여행용 트렁크에서 출발한 브랜드의 역사를 공간으로 보여 준다. 눈앞에서 장인이 가방을 완성하고 로봇이 제품의 내구성을 반복해서 시험하는 모습을 보며, 명품의 추상적인 이미지가 구체적인 태도와 철학으로 바뀌었다. 브랜드가 자신이 살아온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둘째, 공간의 밀도보다 경험의 밀도가 중요하다. 팝업을 기획하다 보면 한정된 공간에 제품과 설명문, 포토존, 이벤트, 굿즈를 최대한 많이 넣고 싶어진다. 그러나 지나치게 빽빽한 공간에서는 방문객이 정해진 동선을 빠르게 소비할 뿐, 자신만의 감정과 해석을 만들어 내기 어렵다. 중국의 향수 브랜드 관시아(观夏, To Summer)는 ‘여백’으로 경험을 만든다. 매장은 모든 제품을 한눈에 보여 주는 대신 방문객이 여러 방을 천천히 이동하도록 설계했다. 방과 방 사이의 여백은 걸음의 속도를 늦추어 향과 빛, 공간의 분위기에 집중하게 한다. 구매와 직접 관련이 없는 전시와 다도 공간도 마련했다. 비워 둔 공간은 낭비가 아니다. 방문객이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채워 넣는 자리다. 누군가에게는 사색의 장소가 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영감의 출발점이 된다. 경험의 밀도는 콘텐츠의 개수가 아니라 한 장면에 얼마나 깊이 머물렀는가로 결정된다.

셋째, 공간을 정하기 전에 전달할 메시지부터 뾰족하게 세워야 한다. 좋은 장소란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 아니라 브랜드가 하려는 말을 대신 해 주는 곳이다. 메이커스 마크의 ‘독주 페스티벌’은 이를 잘 보여 준다. 이 행사는 고도로 발전한 미래 사회에서도 기계가 아닌 사람이 직접 칵테일을 만들고, AI가 아닌 인간이 만든 음악을 들려준다는 세계관을 내세웠다. 대량생산보다 사람의 손으로 만드는 버번 위스키를 강조해 온 브랜드의 철학을 ‘인간이 만드는 독창성’이라는 메시지로 확장한 것이다. 장소로 낙원악기상가를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독주’는 혼자 마시는 술(獨酒)이면서 혼자 악기를 연주하는 행위(獨奏)이기도 하다. 오래된 악기상가에서 바텐더가 직접 만든 칵테일과 뮤지션의 라이브 연주, 수작업 워크숍을 함께 경험하게 함으로써 행사명과 브랜드 철학, 장소가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넷째, 온라인이 제공하기 어려운 다중감각의 경험을 설계해야 한다. 오프라인은 온라인보다 불편하고 비용도 많이 든다. 그럼에도 고객이 직접 찾아와야 할 이유는 화면으로 대체할 수 없는 감각에 있다. 일본의 두부 브랜드 사가 히라카와야(佐嘉平川屋)는 ‘온천 두부(湯豆腐)’라는 정체성을 시각적 장식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온천 지역의 풍경을 바라보며 음식을 맛보고, 중정의 족욕장에서는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자갈을 밟고 따뜻한 온천수의 온도를 느끼게 한다. 시각과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이 하나의 경험으로 연결되면서 방문객은 브랜드가 왜 ‘온천 두부’인지 설명을 읽기 전에 몸으로 이해한다. 다중감각은 단순히 자극을 더 많이 추가하는 것이 아니다. 브랜드와 가장 잘 어울리는 감각을 골라 일관된 기억을 만드는 일이다. 입구에서 기다리고, 이동하고, 체험하고, 퇴장하는 모든 과정에서 고객의 감각이 어떻게 달라 지는지를 설계해야 한다.

다섯째, 지역과 공간이 가진 고유한 가치를 발견하고 브랜드의 이야기로 연결해야 한다. 좋은 공간 브랜딩은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존재하는 공간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는 데서 출발한다. 일본의 세카이호텔(Sekai Hotel)은 이러한 관점을 잘 보여 준다. 이 호텔은 객실 안에서만 경험을 설계하지 않는다. 마을 전체를 하나의 호텔로 바라보고, 여행객이 지역 식당과 목욕탕, 상점, 골목을 직접 걸으며 도시를 경험하도록 유도한다.

특히 다카오카(Takaoka) 지점은 ‘31가지 파란색’이라는 독창적인 콘셉트를 제안했다. 하늘과 바다, 전통 공예, 도라에몽의 작가 후지코 F. 후지오(Fujiko F Fujio)의 고향이라는 문화적 상징까지, 주민들에게는 너무 익숙해서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던 파란색을 하나의 브랜드 경험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여행객은 각자 마음에 드는 파란색 하나를 선택하고, 그 색을 따라 도시를 여행한다. 같은 도시라도 어떤 색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동선과 경험이 만들어진다. 세카이호텔은 새로운 관광지를 만든 것이 아니라, 원래 존재하던 지역의 가치를 발견하고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 냈다. 공간 브랜딩은 건물을 꾸미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장소의 의미를 찾아내는 기획력에서 시작된다.



무언가를 팔기보다는 누군가를 초대하는 마음으로

결국 공간 브랜딩의 핵심은 공간이 아니라 사람이다. 브랜드는 고객을 소비자가 아니라 친구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제 막 처음 만난 낯선 친구일 수도 있고, 오랫동안 함께해 온 가까운 친구일 수도 있다. 처음 만난 친구에게는 나를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오래된 친구에게는 더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함께 추억을 만들어야 한다. 집에 초대해 놓고 물건부터 팔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 정성껏 음악을 고르고, 향기를 준비하고, 맛있는 음식을 내놓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한다. 공간 브랜딩도 다르지 않다. 고객을 초대할 공간을 꾸민다는 마음으로 접근할 때, 그 공간은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장소를 넘어 브랜드와 고객의 관계를 깊게 만드는 특별한 경험의 무대가 된다.



VOL.132(2026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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