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나우] 무마찰(無摩擦)의 시대, Z세대는 왜 불편함에 끌릴까?
- 7월 3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7월 7일
자발적 불편함을 상품화한 덤테크(Dumb Tech) 등장
가장 디지털한 세대가 아날로그를 찾는 이유는?
스마트폰은 세상을 손안으로 옮겨놓았고, 알고리즘은 콘텐츠와 상품을 대신 추천한다. 생성형 AI와 원클릭 결제는 검색과 선택의 수고마저 덜어냈다. 기술은 끊임없이 일상의 ‘마찰(Friction)’을 줄여 왔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편리한 시대를 살아가는 Z세대는 느리고 번거로운 경험을 다시 찾고 있다. 이들이 불편함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Z세대의 새로운 소비 방식과 그 변화가 브랜드에 던지는 시사점을 살펴본다.
글 | 박주범 더피알 기자, 정보학 박사

덤테크는 기능을 덜어낸 기술을 하나의 취향과 세계관으로 소비하게 만든다 © INSTAGRAM@KICJBACK.NY
Z세대에게 레트로 기술을 팔다
미국 경제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가 최근 소개한 덤테크 브랜드 ‘킥백(Kickback)’은 이러한 흐름을 사업화한 대표적인 사례다. 음악가 출신의 런던 잭슨(London Jackson)이 2024년 공동 창업한 킥백은 스마트폰 시대에 잊힌 레트로 기기를 다시 시장에 선보이고 있다. 잭슨은 이런 제품을 ‘멍청한 기술(Dumb Tech)’이라 부른다. 최신 기기에 비해 기능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바로 그 불완전함이 브랜드의 핵심 가치다.
킥백은 카세트테이프로 시작해 500달러짜리 레코드플레이어와 99달러짜리 휴대용 CD플레이어까지 제품군을 확장했다. 이 CD플레이어는 패션 브랜드 어반아웃피터스(Urban Outfitters)와 모마(MoMA) 디자인 스토어에도 입점했다. 2000년대 초반 폴더폰 전성기를 이끌었던 모토로라 레이저(Motorola Razr) 리퍼폰 100대 한정 컬렉션은 출시 후 몇 분 만에 매진됐고, MP3 플레이어 세트 역시 완판을 기록했다. 최근에는 힙합 뮤지션 브렌트 파이야즈(Brent Faiyaz)와 협업해 2000년대 감성을 담은 70달러짜리 포인트앤슈트 카메라 라인도 선보였다. 킥백은 2025년 매출 75만 달러를 돌파하며 벤처 캐피털 투자까지 유치했다. 잭슨은 자사 제품을 두고 “패션 감각을 보여 주는 동시에 디지털 기기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흥미로운 점은 ‘오프라인으로 돌아가자’라는 메시지를 파는 킥백의 성장 동력이 정작 인스타그램과 틱톡 같은 소셜미디어라는 사실이다.
2000년대 초반에 대한 향수, Y2K 디자인, 일회용 필름카메라의 감성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되고 찾기 힘든 레트로 기기라는 희소성은 구매 욕구를 자극한다. 즉, 덤테크는 디지털을 전면 거부하는 움직임이라기보다 디지털 환경 속에서 ‘덜 디지털적인 삶’을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소비하는 방식에 가깝다.
기능을 덜어낸 기술이 특별해지다
이 현상을 단순한 복고(Retro) 유행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핵심은 과거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지나치게 매끄러워진 현재에 대한 피로감이다. 테크 비즈니스는 오랫동안 불편함을 없애는 ‘무마찰(Frictionless)’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더 빨리 찾고, 더 쉽게 사고, 더 짧게 기다리는 것이 좋은 경험의 기준이었다. 하지만 모든 과정이 생략되면서 사람들은 기다림의 설렘, 손의 감각, 직접 고르는 수고, 우연한 발견 같은 즐거움을 잃어버렸다.
지금 주목받는 ‘자발적 불편함’은 이 잃어버린 감각을 다시 회복하려는 움직임이다. 더 쉬운 선택지가 있음에도 일부러 손이 더 가는 방식을 택하는 행동이다. 자동차가 있어도 일부러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것과 비슷하다. 느린 이동에는 속도와 다른 만족감이 있다. 아날로그 경험도 마찬가지다. LP는 스트리밍보다 불편하고, 필름카메라는 스마트폰 카메라보다 느리며, 독립서점은 온라인 서점보다 비효율적이다. 판을 꺼내 바늘을 올리고, 사진이 인화되기를 기다리고, 가격 비교가 어려운 서가를 둘러보는 과정은 분명 번거롭다. 그런데 바로 그 비효율이 경험의 일부가 된다. 소비자는 불편함 자체가 아니라 그 불편함이 만들어 내는 몰입과 감각을 산다.
이러한 배경에는 디지털 피로감과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경험에 대한 갈망이 자리한다. 늘 연결된 상태가 기본값인 Z세대는 기능이 적은 기기나 느린 매체를 선택함으로써 스마트폰 중심의 일상에 작은 틈을 만든다. 음악이 파일이 되고 사진이 클라우드에 저장되는 시대에, 손으로 만지고 넘기고 보관하며 닳아 가는 물리적 흔적은 그 자체로 특별한 가치가 된다.
기꺼이 시간을 쓰게 만드는 좋은 마찰
브랜드들은 이미 이 흐름을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팝업 스토어, 독립서점, 레코드숍은 자발적 불편함이 공간 경험으로 구현되는 대표적인 사례다. 온라인에서 더 빠르게 살 수 있는데도 소비자는 줄을 서고, 공간을 둘러보고, 현장에서만 가능한 경험에 참여한다. 검색창과 알고리즘은 원하는 것을 빨리 찾게 해 주지만, 작은 서점과 레코드숍은 예상지 못한 취향과 만나는 우연을 남겨 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불편함을 무조건 늘리는 일이 아니라 어떤 마찰이 경험의 의미를 키우는지 구분하는 일이다. 복잡한 가입 절차, 결제 지연, 불친절한 동선 같은 ‘나쁜 마찰(Pain Points)’은 여전히 고객을 이탈하게 만든다. 반면 ‘좋은 마찰’은 고객을 막아서기보다 브랜드 안으로 더 깊이 끌어들인다. 한정된 시간과 장소 안에서 직접 참여한 경험은 브랜드를 하나의 기억으로 남긴다. Z세대가 느리고 번거로운 경험을 찾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려는 퇴행이 아니다. 기술을 잘 알고, 편리함을 당연하게 여겨 온 세대가 선택한 새로운 균형이다. 자발적 불편함은 비효율을 감수하는 소비가 아니라 비효율을 통해 다른 효용을 얻는 소비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서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말한다. 장미가 소중한 이유는 그 장미를 위해 들인 시간 때문이라고. 어린 왕자가 물을 주고, 유리 덮개를 씌우고, 바람막이를 세우는 일은 번거로운 과정이다. 하지만 그 시간을 거치며 장미는 특별한 존재가 된다. 덤테크와 자발적 불편함도 이와 닮았다. 효율의 관점에서는 낭비처럼 보이는 시간이 경험의 세계에서는 애착을 만드는 과정이 된다. 기술이 일상의 수고를 덜어낼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손때를 묻히고 마음을 쏟을 수 있는 자신만의 장미를 갈망한다.
이제 마케팅과 공간 비즈니스의 차별화는 ‘고객의 시간을 얼마나 아껴 주느냐’만으로는 결정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무마찰의 일상 속에 기분 좋은 틈을 만들고, 고객이 기꺼이 시간을 쓰고 싶어지는 ‘좋은 마찰’을 설계하는 것이다.

편리함이 극대화된 시대, 일부 소비자는 다시 손이 가는 기술과 느린 경험을 선택하고 있다 © UNSPLASH
VOL.131(2026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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