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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리포트 1] 기술을 넘어 ‘산업 전략’으로, 하노버 메세 2026

  • 7월 3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7월 7일


진열을 넘어, 관계와 전환을 설계하는 공간의 탄생

하노버 메세가 보여 준 새로운 산업 전환의 현장



전시장은 언제나 시대보다 조금 먼저 말한다. 무엇이 전면에 놓이고 무엇이 뒤로 물러나는지, 사람들이 어디에서 멈추고 어디를 스쳐 지나가는지를 보면 산업이 지금 어떤 질문 앞에 서 있는지 읽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난 4월 20일부터 24일까지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하노버 메세(HANNOVER MESSE 2026)’는 단지 거대한 산업 전시회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늘의 제조업이 스스로를 어떤 언어로 다시 정의하고 있는지를 보여 준 하나의 거대한 무대였다.



글·사진 | 김영선 경희대학교 대학원 컨벤션전시경영학과 산학협력중점교수



‘하노버 메세 2026’ 전시장 메인 입구 전경



산업의 중심 문법이 된 ‘전환’

올해 행사는 ‘Think Tech Forward’를 주제로 개최됐으며, 약 11만 명의 참관객이 방문했다. 이 가운데 약 40%는 해외에서 찾아온 국제 참관객이었다.1) 하노버 메세가 왜 여전히 세계 제조산업의 방향성을 가늠하는 대표 플랫폼으로 평가받는지, 현장은 그 이유를 분명히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러나 올해 전시장에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은 것은 규모의 압도감만이 아니었다. 더 인상적이었던 변화는 많은 부스가 예전처럼 제품 자체로 자신을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빽빽이 늘어선 장비 대신 여유 있는 공간이 배치됐으며, 전시 진열대보다 스크린과 체험 동선이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다. 설명의 언어보다 대화와 경험의 구조가 강조됐으며, 기술의 성능과 스펙을 나열하기보다 산업이 마주한 과제와 해결 방안을 함께 논의하는 공간이 늘어났다.

한때 산업 전시회가 더 많은 기계와 더 높은 성능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냈다면, 이제 선도 기업들은 ‘얼마나 많이 보여 주는가’보다 ‘어떤 관계를 만들어 내는가’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그 결과 전시장에는 의도적으로 비워 놓은 여백이 생겨났다. 그 여백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참가업체와 참관객, 기술과 산업, 현재와 미래가 만나는 새로운 접점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전시회가 산업의 전환을 설계하고 새로운 협력 관계를 만들어 내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 준 현장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연출의 취향 변화가 아니라 산업 구조 자체의 변화를 반영한다. 하노버 메세 2026의 공식 메시지는 인공지능, 로보틱스, 자동화, 에너지 인프라, 지속 가능성, 그리고 경쟁력 회복에 맞춰졌다. 특히 제조 현장에서의 AI 활용과 데이터 기반 운영 체계, Manufacturing-X로 이어지는 데이터 주권과 상호운용성의 흐름은 산업의 무게중심이 더 이상 개별 제품의 성능만으로 설명되지 않음을 보여 준다.

이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만드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어떤 데이터 생태계 안에서 연결하고, 어떠한 에너지 체계 위에서 운용하며, 무슨 전환 전략 속에 위치시키느냐’에 있다. 하노버 메세 2026은 이러한 질문들이 더 이상 주변의 담론에 그치지 않고, 산업의 중심 문법에 자리 잡았음을 분명하게 드러낸 무대였다.

1)  www.hannovermesse.de/en. 하노버 메세 공식 홈페이지


 

부스 내 라운지에서 자유롭게 네트워킹을 하는 바이어들 파트너, 참관객과 바이어들과의 네트워킹을 위한 공간

 


부스에서는 무엇을 하는가: 세 개의 장면

부스의 성격도 달라졌다. 전시장은 더 이상 제품을 진열해 두는 공간이 아니라, 기업이 산업 속에서 자신의 역할과 비전을 설명하는 무대로 바뀌었다.

먼저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의 부스는 전통적인 의미의 ‘제품 전시 공간’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쪽에서는 전문가 세션이 연이어 진행되고, 다른 쪽에서는 가이드 투어가 운영됐으며, 또 다른 쪽에서는 기술 시연과 네트워킹이 동시에 이뤄졌다. 여기에 자사 서비스를 활용하는 파트너 기업들까지 함께 참여하면서 공간 전체가 하나의 생태계를 운영하고 있었다. 기술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술이 실제 산업 현장에서 어떻게 연결되고 활용되는지를 보여 주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지멘스(Siemens)의 접근 역시 인상적이었다. 제조업을 대표하는 기업답게 다양한 기술과 솔루션이 전시됐지만, 부스 투어나 현장 설명의 중심에는 개별 제품보다 ‘일하는 방식’이 놓여 있었다. 지멘스는 고객의 생산 프로세스 전반을 지원하는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는 단순한 장비 공급을 넘어 ‘서비스로서의 제조(Manufacturing as a Service, MaaS)’에 가까운 방향성을 제시한 것으로 읽혔다. 그리고 딜로이트(Deloitte), BCG, EY 등의 글로벌 컨설팅 기업들 역시 눈에 띄었다. 전시장 중심부에 자리를 잡고 적극적으로 부스를 운영했다. 이제 그들은 단순한 컨설팅으로 개별 솔루션을 제안하는 수준을 넘어 다양한 기술과 서비스를 연결해 고객의 전환 전략 전체를 통합하는 이른바 ‘엄브렐러(Umbrella)’ 역할을 지향하고 있었다.

이 세 장면을 함께 놓고 보면 산업의 변화 방향은 더욱 분명해진다. 하드웨어 중심의 기업은 서비스 기업으로 진화하고, 제조업과 직접 관련이 없던 기업들은 제조 전시회의 핵심 플레이어로 등장한다. 누가 제조사이고 누가 서비스 기업인가를 가르던 경계는 흐려지고, 그 자리에 ‘누가 산업의 변화를 더 설득력 있게 연결하고 설계하며 실행하는가’라는 새로운 기준이 들어서고 있었다.

 


공간 전체를 하나의 생태계로 운영한 마이크로소프트 부스


MaaS로의 지향성을 어필한 지멘스 부스


전시장 중심부에서 엄브렐러 역할을 지향한 딜로이트 부스

 

 

운영이 말해주는 것: 국가관, 방산 구역, 만남의 설계

전시회의 메시지는 참가업체의 부스뿐 아니라 운영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올해 하노버 메세의 파트너 국가는 브라질이었다. 브라질은 ‘The Industry of Today’를 주제로 제조업 혁신과 에너지 전환, 디지털 역량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며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선보였다. 그러나 현장에서 더욱 인상적이었던 것은 국가관이 보여 주는 상징성 자체보다, 실제 협업과 투자, 공급망과 기술 연결이 일어나는 구체적 접점들이었다. 이는 국가관의 역할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전시회가 국가의 위상을 진열하는 형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산업 간 연결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촉진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에 가깝다.

올해 새롭게 도입된 방위산업 생산 구역(Defense Production Area)은 자동화, 적층제조(Additive Manufacturing), 디지털화, 신소재, 보안 관련 생산기술을 포괄하는 새로운 전시 형식으로 소개됐다. 이 대목은 특히 상징적이다. 지정학적 긴장과 산업 안보, 공급망 재편이 더 이상 산업 외부 변수가 아니라 생산과 혁신의 중심 의제가 되었음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기술은 이제 중립적인 도구에만 머물지 않는다. 안보와 정책, 경제 질서와 맞물려 해석되어야 하는 시대의 언어가 되었고, 하노버 메세 2026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가장 먼저 전시장 안으로 불러들였다.

또 하나 눈여겨볼 장면은 이 전시회가 ‘만남’ 자체를 설계하는 방식이었다.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새롭게 도입된 전시 콘셉트와 센터 스테이지(Center Stage)는 큰 호응을 얻었으며, 행사 기간에 약 3만 명이 이 공간을 찾았다고 한다. 오늘의 산업 전시에서 중요한 것은 많은 제품을 늘어놓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산업 주체들이 같은 질문 앞에 서도록 만드는 일이다. 누군가는 기술을 가져오고, 어떤 이는 자본을, 또는 정책과 규제의 언어를 가지고 온다. 이러한 주체들이 자연스레 교차할 수 있도록 설계된 동선은 그저 걸어가는 길이 아니라 만남의 확률을 설계하는 장치가 된다. 무대는 단순한 이벤트 공간을 넘어 산업적 조율의 중심이자 허브로 기능한다.



센터 스테이지에서 콘퍼런스와 세미나에 참석한 참관객들

 

 

한국 전시산업에 던지는 질문

이러한 변화는 한국 기업과 한국 전시산업에도 분명한 시사점을 남긴다. 이제 전시 경쟁력은 더 큰 구조물이나 더 많은 제품에서 나오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자사의 기술이 어떤 산업적 맥락 속에서 읽히는가, 그것이 자동화와 지속 가능성, 데이터 연결성과 공급망 재편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설득력 있게 보여 주는 일이다. 앞으로의 전시는 제품을 설명하는 공간이 아니라 맥락을 제시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결국 하노버 메세 2026이 다시 정의한 것은 전시회의 형식만이 아니다. 그것은 전시회의 역할, 더 나아가 산업이 스스로를 드러내고 설명하는 방식 자체였다. 오늘날 전시는 관계를 설계하고, 전환의 논리를 공유하며, 기술과 전략이 하나의 언어로 연결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하노버 메세 2026은 미래를 예고한 행사가 아니라, 이미 시작된 미래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 준 장면에 가까웠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무엇을 전시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연결하고 변화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산업 전시를 다시 정의하는 일은, 산업의 미래를 다시 설계하는 일과 맞닿아 있다.



VOL.131(2026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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