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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산책] 아트페어의 역사

미술 박람회의 탄생 배경

글·사진┃정준모 독립큐레이터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아트페어(Art Fair)는 예술 작품 판매를 목적으로 한 미술 시장으로서 오늘날 우리에게 매우 일상적이며 일반적이다. 그러나 우리의 입에 오르내리는 숫자만큼 아트페어에 대한 이해도가 아직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아트페어가 매우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행사로 인식되고 있다. 아트페어가 대중적으로 유행한다는 신호를 보내 더 많은 사람을 유행의 대열에 끌어들이려는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 즉, 관객을 더 많이 불러 모으기 위한 주최 측의 마케팅 탓이다. 마치 사치품(Luxury Goods)을 명품이라 오도해서 사치품과 명품을 구분할 수 없도록 만드는 상술과도 같다.

2022년 파리에서 처음 열린 국제 아트페어 ‘아트 바젤(Art Basel)’ 내부 모습


아트페어, 세계 미술 시장의 주요 인프라로 자리잡다

아트페어는 화랑(Gallery), 작가 그리고 기타 미술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자신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일종의 컨벤션행사다. 따라서 아트페어는 일반적으로 대규모 컨벤션센터나 전시장에서 열리며 회화, 조각은 물론 사진, 비디오 아트 같이 모든 장르의 예술 작품을 전시한다. 또 고대부터 동시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의 작품을 선보이는 일종의 *견본시(見本市, Trade Fair)공간임대 사업으로 특정한 양식이나 주제 없이 전시가 이뤄진다.

즉 아트페어는 장르와 시대를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러나 미술관이나 박물관 전시와 달리 전문 큐레이터 없이 진행하여 작품의 맥락이 없어 보이게 제각각 선보인다. 또 페어의 목적은 화랑이나 화랑에 소속된 작가들의 작품을 더 많은 관객에게 선보일 수 있는 플랫폼이란 점이다. 종국에는 작가와 잠재적 구매자를 연결하는 장소로써 영리를 전제로 판매가 주목적이라는 것도 큰 차이다. 특히 아트페어는 화상(畫商, Art Dealer)들이 미술품을 사고파는 장소이기 때문에 미술 시장의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하지만 문화예술 행사가 지니는 비영리 공공성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상업적인 영리활동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약 350개 이상의 아트페어가 연중 열리고 있고 갤러리에서 직접 판매되는 매출과 크게 차이가 없을 만큼 성장했다. 한편으로는 너무 많은 아트페어로 인해 화랑들의 피로 현상도 만만치 않아 역량 있는 메가 화랑들은 오히려 아트페어보다 직접 주요 도시에 분점을 내는 현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아트페어는 세계 미술 시장의 중요한 인프라로 자리잡은 것만은 사실이다. 오늘날 아트페어 형식의 최초는 1967년 독일 쾰른에서 열린 아트 쾰른(Art Cologne) 행사이지만 아트페어의 역사는 고대(古代)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종교 축제나 순례 행사가 열리면 종교와 상업이 결합하여 진귀하고 값진 물건을 전시 및 판매했다. 또 시연(侍宴), 구경거리, 희귀한 물건을 전시해 귀족이나 지배계급이 흉내 낼 수 없는 탁월한 장점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해 축제와 순례의 특별한 성격을 강조하고 볼 만한 것을 제공하고자 했다. 특히 다양한 국가와 지역에서 온 순례객들에게는 임시로 장터를 세워 성 유물을 전시하고 판매하며 네트워킹과 무역행위를 하였다. 이러한 전통은 서서히 축제의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으며 결국 무역의 증가와 시장의 창출로 이어졌다. 그 결과 박람회와 상업이 친숙하게 만나 새로운 형식의 박람회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 견본시는 판매 촉진을 위해 임시로 상품의 견본을 진열하고 선전과 소개를 하는 시장이다. 국제 견본 시장과 국내 견본 시장이 있다.

 

아트 딜러의 등장, 미술 시장의 중개자로 활약하다

근대에 이르러 프랑스 파리 근교에 생 드니 박람회(Saint-DenisFair)가 등장하면서 수준 높은 공예장인들의 전시가 시작되어 유럽 전역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후 프랑스 북동부의 샴페인 박람회, 영국 케임브리지의 스타워브리지(Stourbridge) 박람회가 열리면서 박람회는 전 세계 상인들이 모여 상업행위를 함에 따라 ‘국제 금융 신용 시스템’을 통합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마침내 전근대 경제학에서 주요한 두 가지 특징인 ‘판매-파트너 모델’과 ‘후원자-고객’의 관계가 성립되었다.

그로 인해 중세 15세기경 장인들의 박람회도 점차 종교나 순례 행사와 거리를 두었고 전시품의 희귀성과 지속적인 마케팅 관계 형성에 중점을 둔 실제 거래 플랫폼으로 발전했다. 이후 16세기 벨기에 도시 앤트워프는 무역 및 박람회의 국제 허브로써 외국 상인들이 정착하는 수출 전진기지가 되었다. 이 박람회는 격년으로 열렸는데 경제 규모가 커져 유럽의 상업 및 금융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좌) 화가 길리스 모스타르트(Gillis Mostaert)가 1590년의 중세 유럽 아트페어 현장을 묘사한 그림 / (우) 화가 펠릭스 드 비뉴(Félix De Vigne)가 1862년의 중세 벨기에 ‘겐트 미술관’을 그린 모습


미술품을 전시하고 판매하기 위한 최초의 박람회는 1460년 성모 마리아 성당 안뜰에서 열린 ‘성모의 약속(Our Lady’s Pand)’ 아트페어다. 이곳에서 그림, 조각, 삽화, 필사본(Manuscript)을 전시하고 판매했다. 이 행사는 엄청난 성공을 이루며 예술 마케팅의 새로운 모델이 되었고 성당 부스 임대료 수입은 성당 건축에 큰 도움을 주었다. 이때 새롭게 등장한 직업이 바로 화상 즉 아트 딜러다. 화상들은 대규모 네트워크, 높은 교육 수준, 끝없는 자본과 상업적 사고를 갖추고 판매자와 구매자의 연결은 물론 자금력으로 판매를 촉진할 수 있었다.

17~18세기에 이르러 기술의 발전, 기계화, 산업화로 이어지면서 샘플 박람회(Sample Fair)가 등장하여 장인 박람회를 서서히 대체했다. 샘플 박람회는 상품 판매보다는 새로운 제품을 광고하고 생산을 촉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현장 거래뿐만 아니라 향후 주문을 유발하는 지금의 무역 박람회(Trade Shows) 초기모델이다. 이러한 박람회는 보다 산업화된 형식을 갖추어갔으며 동시에 전 세계 미술작품도 전시했다. 이후 프랑스의 살롱전과 유사한 전시들이 각국에서 열리며 이들 살롱전이 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행사로 인식됐다. 이는 점차 샘플 박람회에서 미술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었으며 전문적으로 미술품을 전시하고 사고파는 ‘아트페어’로 이어졌다.

오늘날 아트페어는 미술 비평가, 수집가, 큐레이터, 컬렉터(Collector)를 연결하는 원스톱 쇼핑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아트 딜러 즉 갤러리스트(Gallerist)는 한 곳에서 전 세계의 다양한 예술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시장 중개자 역할을 한다. 이들은 아트페어를 순회하면서 미술품을 전시하고 판매하여 미술시장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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