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초사회, 그 전시에 가야할 필연적 이유를 만들어라
글┃서민경
디자인 칼럼니스트(텍스트 공방 대표)
잘파세대(Zalpha Generation)는 Z세대와 알파세대를 합쳐서 부르는 용어로, 199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생을 가리킨다. 새로운 소비 주체로 떠오르고 있는 이들은 가성비를 추구하는 밀레니얼 세대와 달리 ‘시성비’를 중시한다고 알려져 있다. 다른 이들의 리뷰를 살펴보며 과연 시간을 쓸만큼 가치 있는 콘텐츠인지 꼼꼼하게 따져본다는 이유에서다. 이들 잘파세대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전시 마케팅 전략을 살펴봤다.
디토 소비, 누가 그 전시를 방문하는가
많은 예전만큼 지하철이나 버스 정거장, 육교 등에서 전시 광고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어쩌면 그저 못 보고 지나치는 것일 수도 있다. 걸을 때 주변보다 스마트폰을 쳐다보는 일이 일상화된 탓이다. 거리를 도배한 가로등 배너보다 소셜 미디어 광고가 눈에 더 잘 들어온다. ‘디토(Ditto) 소비’라는 용어의 등장은 이러한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물량 공세에 치중한 광고가 아닌 SNS에서 팔로잉하고 있는 유명인이나 인플루언서가 올린 리뷰를 보았을 때 비로소 ‘나도(Ditto)’ 가보려는 마음을 먹게 되는 것이다. 매일 쏟아지는 전시 정보 속에서 취향이 검증된 이들의 추천은 믿음직스럽다. ‘어떤 전시인지’ 궁금해하기보다 그 전시에 ‘누가 갔는지’가 중요해진 시대가 되어버렸다.
대형 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전시회장을 방문한 관람객들은 ‘올해는 뭔가 새로운 게 있을까?’라는 기대감을 품기 마련이다. 어떻게 보면 길게는 일주일, 짧게는 2~3일 동안 펼쳐지는 컨벤션 전시는 각 브랜드의 팝업스토어를 한자리에 모은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단순히 신제품을 선보이고 판매하는 자리라고 여겨서는 곤란하다. 최근 <결국, 오프라인>을 출간한 최원석 프로젝트 렌트 대표는 “오프라인을 광고 매체로 본다면, 기성 미디어 대비 가성비가 압도적으로 뛰어난 플랫폼”이라고 말했다. 팝업 형식의 전시가 공간을 매개로 하는 가장 효과적인 광고 매체로 자리 잡았다는 의미다. 요즘 잘 되는 팝업의 특징은 판매에 열을 올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브랜드 ‘찐팬’들이 머무르며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사용자 경험을 면밀하게 설계하는 게 요즘의 트렌드다. 최원석 대표는 회전율보다 체류 시간을 더 중요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짚는다.
전시회장은 그 어느 곳보다 소비자와 밀접하게 커뮤니케이션 하는 기회의 장이다. 숏폼이나 유튜브 요약본으로 영화나 드라마 등의 콘텐츠를 접한 후 흥미가 생겼을 때 풀 영상을 시청하는 이들이 바로 잘파세대다. 마찬가지로 책도 전자책으로 먼저 구입해서 훑어본 다음 소장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을 때 종이책을 구매한다. 이들이 브랜드에 대해 더 궁금하고 알고 싶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체류 시간을 늘리는 전시 콘텐츠가 중요하다. 단순히 사진이 잘 나오는 포토 스폿을 조성하는 것보다 스토리텔링과 커뮤니케이션에 초점을 맞출 때 ‘소비자’에서 나아가 브랜드에 공감하는 팬들이 생겨난다. 브랜드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소비자라는 의미의 ‘찐팬’이 형성되면 그것이 바로 팬덤인 셈이다. 팬덤의 힘은 인플루언서의 영향력보다 강하다. 진정한 디토 소비가 일어나는 지점은 여기서부터다.
사진 캡션
1 오늘의집 ‘Moving Day: 이사가는 날’. TTTC 스튜디오가 기획을 맡았다. / 출처 한정헌
2 MMCA 멤버스데이. 오아에이전시가 키 비주얼 및 그래픽 디자인, 공연 무대 연출, 현장 대행을 맡았다. /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3 프로젝트 렌트에서 열린 비욘드 캠페인 팝업 / 출처 프로젝트 렌트
4 2024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 / 출처 Ludovica Mangini 결국 시간보다 가치, 소비의 주체들
지난 3월, 오늘의집이 유저 커뮤니티인 ‘오하우스’의 멤버들을 초청한 팝업 전시 ‘Moving Day: 이사가는 날’도 브랜드 팬덤을 단단하게 만든 사례다. ‘온라인 집들이’라는 콘텐츠로 멤버들이 공유한 집과 일상 기록 사진을 전시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서비스 ‘오늘의집 크리에이터’를 홍보하는 팝업이었다. 또 국립현대미술관은 5월 18일 ‘연결과 교류’를 주제로 MMCA 멤버스데이를 개최했는데, 잘파세대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프로그램 구성으로 화제가 되었다. 초청된 멤버십 회원들은 야외 테라스에서 요가하고 차를 마시거나, 미술관에서 출발해 서촌과 경복궁 돌담길을 달리는 ‘아침 달리기’ 등에 참여하며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을 쌓아나갔다.
한편 프로젝트 렌트는 지난해 코스메틱 브랜드 ‘비욘드’ 캠페인 팝업을 진행하기에 앞서 기획 단계에서 20~30대를 대상으로 친환경 화장품 구매 시 참고하는 항목을 조사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화장품 성분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데 비해 잘파세대는 브랜드의 친환경 행보에 높은 점수를 매겼는데 여기에서 캠페인 콘셉트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Less Plastic, Paper is Enough’라는 테마를 정하고 공간에 설치되는 모든 기물을 종이로 제작했던 것이다. 또 ‘화장품 분리배출 챌린지’를 준비하고 플라스틱 공병을 가져온 방문객들이 무게만큼 리필 제품을 가져가도록 하는 등의 체험을 통해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올해 62회를 맞이한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살로네 델 모빌레)도 2021년 마리아 포로(Maria Porro)가 대표로 취임한 이후부터 행사에 참여하는 모든 브랜드가 ‘그린 가이드라인’을 지킬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플라스틱 프리, 업사이클링 소재, 환경에 적은 영향을 미치는 소재 등을 사용해 쓰레기 발생을 줄이고 인쇄물에는 생분해성 잉크를 사용하며 전기와 물을 아껴 쓰도록 하는 내용이 그린 가이드라인에 담겼다.
국내에서도 지난 2월 코엑스가 국내 최초로 친환경 전시 공간 ‘더플라츠’를 개관해 눈길을 끈 바 있다. 팬데믹과 기후 변화를 겪은 잘파세대가 앞장서서 지속 가능성이라는 가치 소비를 추구함에 따라, 대형 컨벤션센터와 개별 부스에 참여하는 브랜드 또한 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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