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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 트렌드 2] 팝업스토어, 경험 경제의 서막


지루한 공간은 죽고 설레는 공간만 생존

젠트리피케이션, 폐기물 문제 등도 떠올라




글┃강나경 문화칼럼니스트



‘팝업스토어(Pop-up Store)’가 유통업계의 성공 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 ‘팝업스토어’란 말 그대로 웹페이지에서 떴다

사라지는 ‘팝업창’처럼 짧게는 하루 이틀, 길게는 몇 개월간 운영되는 임시가게를 말한다. 하지만 해가 거듭할수록 팝업스토어의 의미는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고 있다. 범람하는 팝 업스토어들은 기업과 소비자의 커뮤니케이션 장이자 문화생활공간이며,

수많은 브랜드들의 생존방식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리테일 미디어’이기도 하다.



볼거리, 살거리, 올릴거리 가득한 ‘팝플레이스’

팝업스토어는 미국 대형할인점 타깃(TARGET)이 뉴욕에 신규 매장을 마련하지 못해 열게 된 임시매장이 의외의 호응을 얻으며

번져나갔다. 국내에서는 2009년 나이키와 구호(KUHO)의 팝업을 계기로 새로운 형태의 광고·마케팅 수단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잠시 주춤했던 팝업스토어는 지난해 엔데믹(풍토병화)을 기점으로 유통기업들의 빼놓을 수 없는 마케팅 전략이 됐다. 명품, 패션, 뷰티, 식품 기업은 물론 백화점, 편의점 할 것 없이 팝업스토어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더현대서울은 올해 팝업스토어 입점 스케줄이 꽉 찼을 정도다.

기업들이 이처럼 팝업스토어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팝업스토어가 젊은 세대의 신종 핫플레이스명소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팝업스토어에 열광하는 이들은 주로 10대와 20대. 잘파(Z+alpha) 세대로도 불리는 이들은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에서의 체험을 신선하게 여기고 소비를 통해 재미를 느끼고 싶어 하며 자기의 경험을 공유하고 과시하려는 경향이 짙다. 이들의 특별한 브랜드 경험은 곧장 소셜미디어(SNS)에 업로드되는데, 이토록 자연스럽고 진정성 있는 바이럴 마케팅에 기업이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주우재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취향은 몸의 경험을 통해 확정된다”며 “일종의 가설인 브랜드의 광고를 보여주고 의미있는 경험을 하게 하면 곧장 브랜드를 지지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차별화된 브랜드 경험은 기업이 고객을 위해 열과 성의를 다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충성도 높은 고객을 확보하는 계기가 된다.

 

경험 소비의 시대, 공간과 브랜드의 생존법

“지루한 공간은 죽고 설레는 공간만 살아남을 것이다.” 서울대 소비자경제학부 김난도 교수의 말이다. 실제로 기업 매출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중심으로 바뀌어 가면서 비싼 임대료를 내며 오프라인에 남아있는 매장이 줄어들고 있다. 목 좋은 상권의

대형 의류 브랜드 안테나숍(트렌드 파악을 목적으로 하는 직영점)들마저 손을 털고 나가기 일쑤다. 실제로 전통 상권인 명동이나 강남역에 나가보면 대로변 건물의 공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하지만 팝업의 성지(聖地)인 성수동의 상황은 다르다. 최근 한국부동산원이 공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서울 성동구 성수동 중대형 상가 상권 공실률은 2.5%에 그쳤다. 서울 주요 상권 중 최저 수준이다. 명동의 공실률 31.3%, 강남 9.9%, 홍대 9.6%와 비교해도 성수동의 공실률은 눈에 띄게 낮은 수치다. 제아무리 교통의 요지라 해도 와볼 만한 ‘콘텐츠’가 없으면 고객은 오지

않는다. ‘소유 경제’에서 ‘경험 경제’로의 변화를 설파한 제임스 길모어와 조지프 파인의 말처럼 넘쳐나는 재화와 서비스의 홍수 속에서 판매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기능이나 혜택을 뛰어넘는 놀라운 경험을 연출하는 능력이다.

지난해 말 성수동 한복판에 배를 띄워 화제가 된 주류기업 맥키스컴퍼니의 ‘플롭 선양’은 3주 동안 1만 7,800여 명을 끌어 모으며 대표적인 팝업 성공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예산을 늘리더라도 사람들이 제대로 놀 만한 공간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는 ‘실제로

사람들을 빠뜨려 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로 연결됐고 인공 수조로 물길을 만들어 소주 뚜껑 모양의 작은 배를 띄우고 관람객들이 탈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했다. 다분히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 인스타에 올릴 만한했던 이 팝업스토어)은 방문객들의 자발적 ‘인증숏’을 통해 ‘성수 베네치아’로 ‘눈소문’을 타며 삽시간에 인기 팝업으로 떠올랐다. 덕분에 기업은 지역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딛고 서울과 수도권에 존재감을 확실히 알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팝업스토어는 존재만으로도 의미 있는 공간 콘텐츠다. 매출 다각화를 꾀하는 엔터업계도 이미 팝업 마케팅에 뛰어든지 오래다. 특히 팝업스토어는 아티스트가 직접 등장하지 않는 이벤트임에도 수많은 팬과 소통하며 접점을 늘리는 장점이 있다.

지난 2월 서울 금호동의 목욕탕 건물을 개조해 만든 복합문화공간 ‘알베르 금호’에서는 K-팝 아티스트 르세라핌의 팝업스토어가 열려 북새통을 이뤘다. 3월 신세계 강남점에서 열린 그룹 세븐틴의 팝업스토어에도 아티스트가 만든 굿즈를 사려는 수많은 팬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팬덤이 곧 경제인 시대, 아티스트와 팬들의 소통, 경험 공유와 공감대 형성을 위한 공간 기획 능력이 엔터

산업 마케팅의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직접 타볼 수 있는 ‘플롭 선양’의 수조와 크라운캡 보트 / 출처 맥키스컴퍼니



지속가능한 팝업스토어

한편 팝업스토어 열풍에 따른 임대료 상승으로 기존 상인들이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정비의 메카’에서 ‘팝업의 메카’로 변해버린 성수동의 기존 상인들은 이미 다락같이 치솟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변두리로 밀려나고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임대료 상한 제한 규정 신설 등을 포함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법 개정을 촉구하며 지역상권과의 상생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밀려난 상인들의 고민을 해결할 길은 요원해 보인다.

팝업스토어 폐기물의 환경문제도 인지가 필요한 상황이다. 10~14평 내외 소규모 팝업스토의 폐기물 양은 약 1톤. 짧은 주기로 설치와 해체를 반복하는 팝업스토어의 특성상 그 양이 어마어마한데 폐기물 처리 기준도 없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여기에 기한 한정 제품과 스티커, 문구류와 에코백, 텀블러 등 무료로 나눠주는 굿즈들도 불필요한 쓰레기를 양산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팝업스토어의 목적은 결국 ‘가치있다는 인식’을 만드는 데에 있다. 친환경 제품을 나열해 놓은 화려한 인테리어는 물론 보기 좋지만 주변 상권이나 환경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기업의 철학이 오히려 소비자에게 더욱 깊은 인상을 남길 수도 있을 것이다.

소비자들은 팝업스토어의 양적 성장만큼이나 지속가능한 가치를 포함한 질적인 성장도 기대하고 있다.



목욕탕 건물을 개조해 만든 르세라핌 팝업스토어 ‘알베르 금호’ / 출처 하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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